우선 괜찮다면 제 책(“대호하루”)을 (무료로) 보내드리겠으니 받을 주소와 이름을 보내주십시오. (juwhan@cnu.ac.kr) 2004년경부터 설원기를 들여다보고 글을 쓴 것들을 2012년에 정리한 결과입니다. 여러 대학 도서관에 기증되었으니 가능하다면 근처 도서관에서 찾아봐도 좋을 것입니다. 지금 의문을 던지신 여러 내용에 대해 고심에 고심을 거듭하며 내린 결론들이 들어 있으니 한 번 보시면 제 대답을 확실하고 상세하게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저도 처음에는 차원부라는 인물이 최소한 산속에 숨어 살며 학을 키우고 매화를 피우며 살던 에피소드라도 남긴 인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얼마 후 설원기의 정체를 알고 나니 그런 것조차 믿을 것이 없어졌습니다.
설원기는 저자도 위조되었고(위조된 저자는 한두 명이 아니라 여러 주석자들과 응제시의 저자들까지 포함해서 수십 명입니다), 저작 시기도 위조된 것이 명백하며, 죽은 사람이나 어린 사람이나 심지어 만 2세의 아이가 응제시를 썼다고 나오는 책입니다. 위화도회군이나 왕자의 난 등의 사건들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조금만 검토해보면 그 안에 나와 있는 사건의 묘사나 차원부의 행적은 믿을 것이 없고, 왕명으로 지었다는 표현들로 도배를 해놓았지만 이본이 하도 많아서 그 말을 믿을 수 없으며, 그곳에 나온 사실들, 예를 들어 무척 많은 사람들의 귀양 기록이나 혼인 기록을 보면 거짓으로 점철되어 있습니다. 특히 차원부의 윗대의 10여대의 혼인관계 기록이 거짓으로 판명됩니다. 설원기에 파(먹는 파)에 관한 일화가 있는데 그것조차 믿을 수 없습니다. (고려 태조가) 차효전에게 연안을 관향으로 삼도록 했다는 표현도 나오는데, ‘연안’이라는 지명은 그 후 400여년 후에나 나오는 지명이라서 거짓입니다.
설원기는 무엇인가 과대포장된 것이라고 인정해도 그 과대포장을 걷어내면 무엇인가 사실이 있지 않겠는가 하는 의견은 당연히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 이방원이나 역사적인 사람들의 이름을 제외하고는 그 행적의 묘사나 그들이 썼다고 하는 글들을 믿을 근거는 없습니다. 애초에 가문의 역사를 조작해 내고 그중 한 인물의 행적을 특별히 조작해내려고 만든 문헌이라고 한다면 그런 조작 혹은 과대포장 뒤에 어떤 진실의 편린(片鱗)이 있다는 것도 믿기 어렵고, 있다 해도 워낙 거짓이 많아서 어떤 것이 진실인지 알아내기 어렵습니다.
차원부는 그 행적이 설원기에서 처음 만들어졌습니다. 설원기 이전에는 그가 성삼문 못지않은 고려의 절신(節臣)이었고, 대단한 성리학자였고, 조선을 있게 한 숨은 공로자라는 그에 대한 묘사가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습니다. 정사(正史)라는 것은 사실 모호한 개념이며, 그런 것이 없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일차적 사료들을 중심으로 역사적 진실과 거짓에 대한 접근은 가능하며 시대를 이해하려는 시도에서는 최대한의 접근이 요구됩니다. 그런 면에서 차원부는 그 행적이 설원기에서 처음 조작된 것으로 평가될 수밖에 없습니다.
차원부는 따라서 그 실재(實在)도 의심됩니다. 물론 차원부라는 이름의 인물이 언젠가 어딘가에서 살아있었을지도 모르지만 설원기에서 묘사된 그런 행적의 차원부는 실재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설원기의 행적이 거짓이므로 그것을 걷어낸 다음에 남는 차원부라는 인물은 만에 하나 언젠가 그런 사람이 있었다 해도 지금의 논의에서는 아무런 역사적 의미가 없습니다.
설원기 이후에는 이름이 난 학자들도 설원기를 인용하거나 인정하는 모습을 보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성호사설” 같은 일부 호의적인 평가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보면 그들은 모두 설원기의 교묘함에 기만을 당한 것입니다. 그들은 각자 훌륭했지만 내가 지금 찾아볼 수 있는 그동안의 연구결과들과 문헌들과 정보들을 갖고 있지는 못했습니다. 명분주의와 사대사상에 빠져서 진실을 보지 못한 측면도 있을 것입니다. 반면에 조선시대에도 설원기를 ‘비루한 위작’이라고 단정한 분들도 몇몇 있습니다. 그리고 “일성록”의 정조와 해당관청에서 차원부의 이야기 곧 설원기는 ‘믿을 근거가 없다’(無以考信)고 세 번이나 내린 평가는 참으로 중요합니다. 지금도 그에 반(反)하는 내용이 조작된 교지(敎旨)가 숭배되고 있는 상황은 설원기의 실제 모습을 웅변하고 있는 듯합니다.
설원기는 역사적인 문헌이 아닙니다. 역사를 조작한 문헌입니다. 이것이 소설로 나왔다면 재미있구나, 하고 넘길 것입니다. 하지만 왕명을 참칭하고 수십 명의 저자들을 거짓 내세우고 내용을 역사적인 사실인양 꾸며 묘사한 책입니다.
문화류씨 시조 류차달의 경우에는 그 역사성에 의문이 제기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에게 붙은 짧은 역사적 묘사는 고려 개국의 상황에 반하지 않으며 고려시대에 금석문(비석글)으로 쓰여서 지금도 그 증거가 남아 있습니다. 구월산 자락에 있는 그의 무덤이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고 최근 그의 무덤이 북한에서 문화재로 등록되기까지 했습니다. 물론 그 어떤 역사적 사실도 의심의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류차달의 경우에는 만들어낸 것이라면 그 주체나 시기가 특정되어야 의심이 타당성을 띨 수 있는데 그런 특정이 어렵습니다. 반면에 설원기와 차원부는 특정한 시기에 특정한 주체에 의해 특정한 목적으로 조작되었음이 밝혀져 있습니다. 설원기와 차원부는 그 문제 자체로 다루어야지, 다른 사건이 문제가 있어도 받아들여진다고 그것도 받아들여야 한다는 주장 내지는 암시를 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저나 다른 연구자들이 설원기와 차원부에 대해서 결코 감정이나 느낌으로 접근하지 않으며, 하루 이틀 만에 성급하게 어떤 결론을 내린 것이 아닙니다. 저도 책으로 묶기까지 8년 이상의 시간이 걸렸습니다.
‘연안’님의 차분한 접근에 무척 감사를 드립니다. 저는 이런 일을 집안일로 생각하고 접근하지 않습니다. 종친이나 가문의 입장에서는 반드시 진실만을 선호하는 것이 아님을 자주 목격하며, 저는 그런 것을 경계합니다. 만일 이런 문헌이 우리 집안에 있었다 해도 저는 동일한 비평을 했을 것입니다. 제게 이것은 역사의 진실의 문제이며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오해가 없기를 충심으로 바랍니다.
2013년 11월 22일
류주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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