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류씨

Re:우선 고려사의 류공권 항목 검토입니다 [족보내용]

ryu하곡 2008. 10. 6. 15:14

1.  택의 출생년도는 없으나 족보에 의하면 언침(尙書公, 諱 彦沉)은 고려 18대 의종(毅宗 21년 丁亥) 1,167년생이며 좌 복야공 휘 택(左 僕射公 諱 澤)은 : 약관(弱冠 : 20세)에 文科 급제하고, 명종 24년(1,194년 甲寅) 3월에 봉어(奉御)로 재직하였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숫자상으로 계산해 보면 보1,167년에 봉어까지 근무연한을 무시하고라도 문과에 급제한 연도를 1,194년이라 가정하고, 1,194년-20년(약관에 급제했으므로)=1,174년이 택의 출생년도입니다.

  언침 출생년도에서 1,174년을 빼면 7년이 나옵니다. 이 7년은 형제간 태어난 터울 년수+문과급제 후 봉어까지 승진한 년 수 입니다.

  택공의 출생년도는 없으나 과거에 급제한 년도와 출사한 년도는 간단(簡單)하게 묘표(墓表) 및 족보에 나와 있어 추정해 보면 父 公權公의 墓誌銘과 함께 失傳 후 몇 代가 지나 墓誌銘이 새겨졌을 것으로 사료됩니다.

2.  휘 택(諱 澤公)의 아들 璥, 孫에 승(陞), 曾孫에 돈(墩)과 인기(仁琦)로,특히아드님인文貞公(璥, 1,211-1,289)께서는 20代 神宗 21代 熙宗 22代 康宗 등 세왕의 실록을 편찬한 분인데 父親의 내역 및 형제분에 대한 기록을 남겨 후손에 가승(家承)으로 전하지 못했다함은 어떤 이유가 있었을 것입니다.

3.  영락보 서문 중 「若論其派 大提學寬與其都觀察使思訥同源於文簡公也」「그 파벌로 말하건데 대제학 관(寬)은 도관찰사 사눌(思訥)과 함께 문간공(文簡公)에 근원을 같이 하였고」“정승 양(亮)은 정신공(貞愼公 陞)의 현손(玄孫) 이요 등등 文簡公의 八代 를 이어 대대로 가풍(家風)을 널리 떨쳤다” 하였으나,

4.  가정보 (희잠希潛, 大丞公 20世, 忠景公派)는 휘 공권의 행장(行狀) 5쪽을 보면 언침(彦沉)공 및 夏亭公 諱 寬은 등재되어 있지 않고 子 澤(左僕射) 및 직계손(희잠 시대까지)에 대해서만 등재되어 있습니다. 반면에 첫 쪽(天)의 文化柳氏 世譜 卷之一의 索引表에는 남녀 구분 없이 출생 순위대로 女 尹威, 子 柳彦琛, 子 柳澤이라 등재되어 있습니다.

 5.  1915년(乙卯) 참봉 병철(秉轍)공이 문간공의 墓誌를 박물관에서 발견한 이후에 1916년(丙辰)년 신도비를 寅哲公에게 撰하도록한 전 종원(全 宗員)은 물론 유림 의 공론 및 언침과 택의 공직임명년도, 가정보의 출생순위 등은 무시하고, 공권 묘지명에 의해 써졌을지도 모르는 고려사와 묘지명만 믿어야 되는지? 많은 근거 자료의 연구가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