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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류씨[柳]..신천 강씨[康]| 문화인류,민속학 전반
기자묘 제사에서..나라에서 기자 후손을 찾았을때... 선우씨가 나섭니다.
그리고 .능 참봉직을 대대로 세습했읍니다 .
그런데 단군과 동명왕의 제사를 올리는 평양숭령전에서 참봉직을 구할때는 ...단군의 후손이 나타났다는 ..이야기가 없군요
과연 단군의 직계는 절멸한 것일까요...
신화를 보면 .그 집단의 이주 경로는 .묘향산에서..평양..개경.. 구월산 ..입니다...
구월산 삼성사가 있는 곳은 ..황해도 문화군..과거는 신천군이였다고 하는군요...
그 지역 유력 호족을 살펴보면 ..문화류씨[柳]...신천강씨[康]..가 있읍니다 ...
. 신천강씨와 문화류씨의 신화에서...호랑이 토템만 보일뿐 ...
북방 유목민족의 신화로 예상되는..단군에 관한 내용은 보이지 않읍니다...
삼위 태백산으로 부터 왔다는 것은....중국서북방으로 부터 이주한 것이고..
묘향산과 구월산에 전하는 단군굴신화도 ...멀리 중앙아시아에서 그 기원을 찾을수 있기에 ....
그 후손으로 가장 유력시 되는 신천강씨와 문화류씨신화에서 그 내용이 보이지 않는다면....그 적손은 과연 있는가....
삼한습유기에서는 단군이 후예는 ..부여.. 말갈..숙신이..되었다 ..간략하게 적고 있읍니다
후손은 있었으나 .성씨도 알수 없고...국내에는 그 직계 후손 씨족이 없다는 ...의미로 해석되는군요 .
그렇다면 ..류씨[柳]와 강씨[康]는 무엇이냐 ...하는 물음이 있읍니다 ...
단군신화가 고려시대 부활했다고 한다면...개경왕씨와 연관이 없을수 는 없읍니다
그 가문이 부계인 왕씨가 아닌 ...신천 강씨에 연원을 두었다면 ....신천강씨가 단군조선의 후손이라는 뜻이 됩니다
문제는 ..그 가문의 토템..호랑이를 어떻게 해석할 건가..가 되겠군요..
단군신화를 분석해 보면..환웅의 결혼은 웅녀집단 이외의 다양한 버젼이 있읍니다
단군은 .비서갑 하백의 딸...결혼 부루가 나왔다
환웅... 백호와 교통하여 단군이 나왔다 [묘향산지]...
단웅천왕 손녀와 단수신과...결혼 ... 단군이 나왔다 [제왕운기]
환웅족과 결혼한 ...나무신와 하백과 호랑이는..전혀 다른 토템처럼 보인지만 ... .
사실 .산동성 대문구문화권에서 보이는 가장 대표적인 토템.이라는 공통점이 있읍니다 ...
특히 ..서[徐]지역은 호랑이토템의 중심지....호방[虎方]으로도 불렸읍니다
호랑이 토템은 ..대문구문화 초창기부터..주류의 토템으로...
대문구 문화의 확산을 타고 퍼져나간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 문화에서 호랑이를 뜻하는 단어는.. 도....어도 ..오토..
문헌으로 본다면 ..사천 파[巴]지역까지..그 단어가 펴졌다...는 중국학자들의 보고입니다
평안도의 호랑이를 뜻하는 단어는 ..도루바리..일본어에서는 도라.. 같은 계열로 판단됩니다
고고학적으로도 요동반도 ..흑도문화의 전래는 ...연대가 기원전 2000년을 넘어갑니다
한반도 호랑이 토템의 전래가 4000년전 으로 올라갈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대문구신화의 중심 ..서왕모신화를 볼까요
그녀의 뒤에는 두마리의 호랑이가 있고..그녀의 성은.. 버드나무 양씨[楊] ..
..호랑이와 버드나무 토템이 있는... 문화 류씨[柳]를...그 문화와 연관있다 보는 이유입니다 .
결론한다면 ...
문화류씨[柳]와 신천강씨는 ..단군조선의 모계혈족이였고..그 연원은 .산동성 출발 .대문구.예족이였다...
*신천강씨는 ..현재 번창한 씨족은 아닙니다만...
궁예의 부인이 신천강씨..이성계 부인이 신천강씨...
이방원에 의해.. 그 씨족이 주살 되기전 까지는...상당한 명문가였을 것으로 ..판단되는군요.
묘향산의 단군 유적
단군굴檀君窟 : 향로봉 남쪽에 위치한 아란봉 아래에 있다. 단군암 오른쪽에 있고 붉은 문짝으로 영암靈巖임을 표시. 등천굴登天窟이라고도 한다. 높이 4장, 동서 폭이 5肘(=10자), 남북 폭이 3肘(=6자). 굴 가운데 맛있는 맑은 샘이 있음. 단군이 나라를 다스렸던 곳. 단군대의 오른쪽에 있으며 바위와 돌로 여닫이문을 만들었음. 단군이 강신한 곳이라고 함
호대虎臺 : 인호대引虎臺라고도 한다. 상원암 근처에 있는데 가는 길이 없고 여름 5월에도 진눈깨비가 오곤 했다. 호랑이가 이곳에서 농사를 지으면서부터 길이 개통되어 호대라고 부르게 되었다.
* 매우 특이한 이야기인데, 『제대조기第代朝記』(18세기초 승려 추붕(1651-1706)이 지은 『묘향산지』에 수록됨)에는 환웅이 웅녀가 아니라 백호와 교통하였다고 전한다. "호대"는 이런 전설을 뒷받침하는 이야기일 수도 있다. 김성환은 굴에서 도망친 호랑이가 피신한 곳으로 파악하고 있다. 『제대조기第代朝記』는 『朝代記』와 글자가 매우 유사하다는 점도 흥미롭다
삼성암三聖菴 : 향로봉 북쪽에 있다. 환인, 환웅, 단군을 모신다.
* 황해도 문화현에 삼성당이 있다. 목적은 삼성암과 동일.
정화왕후의 증조부로 개성 왕씨의 조상이 되는 인물 중 한 명이며, 신천 강씨의 시조로 신천 강씨 족보에는 강호경(康虎景)이라고 적혀 있다. 고구려 유민 출신이라고 한다.
고려사에 수록된 고려세계에 등장하는 설화적 인물이다. 설화에 따르면 스스로 성골장군(聖骨將軍)을 자처했으며 고구려 유민인데 성골이라니 백두산에서 내려와 유람하다가 개성 부소산(송악산)에 자리잡아 가정을 꾸렸다. 이후 평나산의 산신과 결혼하고 같이 사라졌다. 본처가 그리워 밤마다 본처 앞에 나타났다고 한다. 아들로 강충(康忠)을 두었다. 신천 강씨는 강충의 아들 강보전(康寶甸)에게서 이어진다
기타 단군조선에 대한 기록은 《삼국유사》, 《제왕운기》 등에 전해지는데, 일반적으로 《삼국유사》의 내용이 알려져 있다. 위서(魏書)에 기록하길 "지금으로부터 2,000년 전에 단군 왕검이 있었다. 그는 아사달(阿斯達, 경(經)에는 무엽산(無葉山)이라 하고 또는 백악(白岳)이라고도 하는데 백주(白州)에 있었다. 혹은 또 개성(開城) 동쪽에 있다고도 한다. 이는 바로 지금의 백악궁(白岳宮)이다)에 도읍을 정하고 새로 나라를 세워 국호(國號)를 조선(朝鮮)이라고 불렀으니 이것은 요(堯)와 같은 시기였다.
백악(白岳)이라고도 하는데, 백주(白州) 지역에 있으니 개성 동쪽에 있는 오늘날의 백악궁(白岳宮)이 이것이라고 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권43 황해도 백천군 건치연혁조에 따르면 백주라는 명칭이 처음 사용된 것은 고려 초의 일이라고 한다. 이후 백주는 여러 공신들을 배출함에 따라 개흥(開興)·충익(忠翊)·복흥(復興) 등의 명칭으로 다양하게 변하여 불리어지다가 공민왕(恭愍王, 재위 1351-1374년)대 시중이었던 경복흥(慶復興)의 이름을 피하기 위해 다시 백주라 하였다. 조선 태종(太宗) 13년(1413)에 이르러서는 명칭을 백천(白川)으로 고치고 군(郡)으로 삼게 되었다.
이후 일제강점기인 1914년 행정구역 폐합 시 인근의 연안군(延安郡)과 합쳐 연백군(延白郡)으로 통합되었다가, 이후 1952년 연백군이 다시 연안군과 배천군(배천의 “배”자는 백주의 “백”자가 옮겨 쓰이면서 “ㄱ"이 빠진 것이다.)으로 분리되어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평나산(平那山; 지금의 聖居山)
개경 을 중심 으로 주변 산세 를 살펴보면 . 위로 는 대후 산성 大與山域 이 있는 성거산 聖居山 과 천마산 夭磨山 으로 연결 되고 아래 로 는 친 봉낟 進風山 으로 이어 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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