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류씨

[스크랩] 거짓은 거짓을 낳는 차원부설원기의 악순환

ryu하곡 2014. 8. 12. 20:11

거짓은 거짓을 낳는 위서 차원부설원기의 악순환

 

차원부설원기 위작설에 대한 [연안차씨종친회중앙본부] 홈페이지에 등재된 아래와 같은 글을 분석하여 거짓으로 꾸며진 위서가 400여 년 이 땅에 지탱하여 옴을 알아봅니다.

 

질문과 답변 no 23             차원부설원기에 대한 토론   ⑩ 2014. 7.21.

 

본문의 일부

 

“차원부설원기가 한미한 차문의 위상을 높이고져 차식3부자가 위작하였다는 주장은 아무런 근거가 없다는 주장으로 박은정 [차원부설원기]이본의 유통과 배경 논문에서 충분히 검토하였으나 전혀 근거를 찾을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시대 차문에서 [설원기]를 쓸 수 있는 문장을 갖춘 분이 차식 3부자라는 이유로 선조를 폄하한 것은 사자에 대한 명예 훼손으로 많은 죄를 짓고 있음을 유념해야 한다.

설원기의 내용이 시대의 참 역사라는 증험은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나 그간의 짧은 연구에서도 설원기의 위작설은 잘못된 주장임이 밝혀졌다.“

 

❮차원부설원기❯이본의 유통과 그 배경” 박은정 연구 논문의 본문에서 위 주장을 검토하였더니

400여 년 전 차천로에 의해 위서 되었음을 확인하면서 거짓이 거짓을 낳는 설원기의 끈질긴 생명력을 다시 확인하였습니다. 진실의 본질을 저버리고 연안차문에서는 위서를 위작하는 대 물림이 오늘 날에도 아래와 같이 거짓을 이어 가고 있습니다.

박은정 연구논문에서 위 주장을 분석하는 글만 페이지를 표시하여 올렸습니다. 위조, 위작, 위조 단어는 붉은색

 

(119페이지) ① 1392년 건국된 조선은 서둘러 이전의 역사를 정리하는 작업을 진행시켰다. 그 결과 몆 대에 걸친 수정작업 끝에 고려사가 완성될 수 있었다. 하지만 조선 건국의 정당성과 역성혁명의 당위성 문제로 인해 고려 전기에 비해 고려 말 정치상황이 부정적으로 서술 묘사되었거나 절의 인사들의 행적을 모습을 찾을 수 없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렇게 기억속에 사라진 여말 절의 인사 중 차원부란 인물이 존재한다. 차원부 역시 ❮고려사❯❮조선왕조실록❯ 등의 정사에는 그의 행적에 관한 기록이 전해지지 않고 있으나 고려 말 그의 억울한 죽음을 설원해준 자세한 기록이(210페이지) 현재 ❬설원기❯❮설원록❯❮차문절공유사❯ 등의 다양한 이름으로 전해지고 있다.~~~

 

(211페이지) ② 이수건은 성씨와 족보편찬과 관련된 일련의 연구 발표를 하는 가운데 조선시대 족보 위조 등의 자료조작관련 문헌중의 사례로 ❮설원기❯를 언급하였다. 그는 16세기에 차식 삼부자가 중심이 되어 만든 소설로 한미한 가문인 차씨 집안에서 문중을 돋보이게 하려는 보상 심리에서 만든 결과물이라 평가 하였다.

(212페이지) ③ 김난옥역시 사실과 먼 위작일 가능성이 농후다고 판단하였다. 본고의 목적은 기존 연구에서 지적한 위작과 관련된 사실 문제를 검토하는데 초점을 두기보다는 차원부라는 인물과 그의 죽음을 서술하고 있는 ❮설원기❯라는 텍스트 변화과정, 그리고 이를 유통시키는 주체들과의 복합적 관계를 통해 그 의미를 해석하는데 있다.


(214페이지)❮설원기❯는 구봉령(1526~1586)의 박담선생 문집편에서 처음으로 그 내용이 확인된다. 구봉녕이 1526~1586년(선조19)까지 살았던 인물임을 고려할 때❮설원기❯는 적어도 1586년 이전 필사본의 형태로 유통되고 있었다는 추측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박팽년 하위지에 의해1456년 5월21일 완성된 것으로 기록된 책이 사육신 사건(1456년 6월2일)으로 이들이 처형된 후 100여년의 시간이 흐른 뒤 사료에 등장하고 있는 셈이다.

 

(214페이지) ④ 위작자판단되며 동시에 이 문건을 소유하고 있었을 것이라 생각되는 차식(1517~1575) 차천로(1556~1615)는 개성지방에 근거를 두고 서경덕(1489~1546)에게 수학한 문인들로 화담학파라 할 수 있다.

(233페이지) ⑤ ❮설원기❯의 내용 중 위작이라 판단할 부분은 무엇인지 내용 중 문제가 되는 점을 간략히 지적해보고자 한다.

(236페이지) ⑥ ❮설원기❯와 위작여부와 관련된 응제시를 지은 40여명의 인물들 중 박팽년이 살아 있을 때 응제시를 쓸 수 없는 인물의 시가 실려 있다는 점이다~~~

(239페이지) ⑦ ❮설원기❯가 위작임을 문집에 기록하였고, 위작이 언급된 뒤에도 또 다른 한편에서는 사실로 유통되어 가는 양상으로 구분할 수 있다.

(244페이지) ⑧ 위와 같은 위작설은 흘러 나왔지만❮설원기❯의간행은 지속되었고~~~~~

(248 페이지) ⑨❮설원기❯가 위작되었던 이유, 위작임이 언급된 후에도 간행이 지속되면서 유통이 가능했던 그 배경을 가장 큰 영향을 행사 했던 집안과 문중이 대두하는 모습을 통해 확인해 보고자 한다.

(249페이지) ⑩ 위작자로 판단되는 차식 등은 어떤 방법으로 ❮설원기❯를 위작할 수 있었고, 위작했던 이유와 책을 읽었던 당시인들이 이해하지 않았던 이유는 어디 있을까?

(269페이지) ⑪ 설원기의 내용을 살펴보면 16세기 생존한 차식 부자대에 줄거리가 완성되어 유통되었을 거라 판단되는데~~~~

 

위 논문에 기록된❮차원부 설원기❯를 위서라고 한 주창자들

 

1. 이 선 1522~1586 떠도는 말 중에 거짓이 많다.

2. 남극관 1689~1714 몽애집에서 위작 사실 최초로 언급

3. 이 익 1681~1783 어디서부터가 진실이고 거짓인지를 분간 할 수 없다.

4. 홍계희 1703~1771 위작임을 언급

5. 윤광소 1708~1786 위작이라고 문집에 싣지 않았다.

6 황윤석 1729~1791 차천로 부자가 위작하여 세보를 넓히려 하였다.

7 황윤석과 홍백능이 1776년에 설원기를 재차 언급하고 대화를 한 과정에서 보이는 태도로 위작설에 대해 이미 알고 있었지만 그들은 사실 여부를 분석하기 앞서 차원부의 절의를 더 중요시하는 입장을 보인다는 점이다.

 

토론 : 위의 의견을 주신 분께

 

1. 위 논문의 자료를 검토하여 보니❮차원부설원기❯가 위작이란 근거를 전혀 찾을 수가 없습니까?

2. 차원부설원기가 위작이라고 거명한 학자들도 부정합니까?

3. 차원부설원기는 진실의 기록이라고 하실겁니까?

4. 설원기가 위작이라고 하는 자는 명예를 훼손하여 많은 죄를 짓고 있습니까?

5. 설원기의 위작설은 잘못된 것입니까?

 

 

2012년2월4일 [문화류씨 뿌리깊은버드나무 : http://cafe.daum.net/moonwharyu] 류차문제 방 36번에 설원기독후록 5. 박은정연구 논문 : "차원부설원기 이본의 유통과 배경"을 등재하였으니 위 논문을 접하기 어려운 분은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출처 : 문화류씨 - 뿌리 깊은 버드나무
글쓴이 : 한뜻 류재준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