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류씨

[스크랩] 고구려, 백제의 성씨와 이름은 어디로 갔는가?

ryu하곡 2013. 5. 25. 12:32

고구려, 백제의 성씨와 이름은 어디로 갔는가?

을지문덕, 연개소문, 을파소, 명립답부, 계백, 흑치상지, 부여융...
과거 우리 역사를 주름잡던 사람들의 이름과 비슷한 이름은 고려시대와 조선시대를 흐르며 찾아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어떤 자들은 고구려, 백제의 부여계가 모두 당나라나 일본으로 끌려가거나 이주했기에 남아 있지 않은 것이라 말합니다.(그러면서 이 작자들은 고구려 백제의 역사는 한국의 것이 아니라는 어처구니 없는 소리를 합니다.)

과연 그런 것일까요?
왜 현재의 우리는 부여계의 독특한 이름들과 성씨들을 찾기 어려운 것일까요. 

왕이 되면서 뽀대나는 성씨로 바꿨지!
(이미지 출처 : KBS 드라마 '대조영')



위에 수종 본좌의 말씀대로 성씨나 이름은 바뀝니다.

특히 나라가 망하고, 문화적인 기조가 바뀌면 그 패턴도 변하거나 묻히지 않을 수가 없는 겁니다.

원래 귀족이었다가 천민으로 전락하는 사례라면 말할 것도 없고, 새 나라의 지배세력이 되거나 편입되면 왕에게 사성을 받거나 성을 바꿀 필요성을 느낍니다.

왕건에게 권씨를 사성을 받은 안동 권씨의 시조 '권행'이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으며, 이성계의 의제인 여진인 퉁지란은 이지란으로 바뀌어 조선사회에 편입되었습니다.

이와 반대로 이성계에게 멸문당한 고려 왕씨들은 살아남기 위해 玉씨나 全씨, 田씨 등으로 바꾸었습니다.


현재 우리가 주로 쓰는 성명은 성 한자에 이름 두자인 체제입니다.
이것은 김씨가 왕족으로 굳은 이후의 신라에서 주로 많이 볼 수 있는데, 아마도 김씨로 대표되는 북방의 이주민족(부여계와는 다른...)의 성명 체제가 아닌가 싶습니다. 여기에 한자의 전래와 유포로 순수 우리말인데 한자로 음차된 이름들은 점점 사라진 듯 합니다.

신라가 온전하게 삼국통일을 이루었다고 하기는 어렵습니다만, 문화적으로는 이후 한민족의 기초가 된 것은 사실입니다.
후대 통일왕조를 연 고려는 신라의 북방에서 발원하였고, 이 시기에 멸망한 발해의 왕족과 유민들도 고려의 문화권에 포섭됩니다.

이렇게 되니 좀 난다 긴다 하는 지배자들은 성씨를 
이씨, 박씨, 김씨 등의 주류 성씨로 바꾸어 갑니다.
기존의 성씨와 같거나, 비슷한 성명을 취해야 권위적이고, 지배층에 편입되었다는 티를 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니까 '견훤'이란 내 이름은 폼이 안난다 이거냐?
(이미지 출처 : KBS 드라마 '태조 왕건')
 



하지만 그렇게 체계를 갖춘 성명을 갖춘 것도 지배층에 국한된 일이었습니다.
고려시대는 물론, 조선시대에도 일반 백성들은 성이 없거나 이름도 대충 지어지는 일이 많았지요.(망이, 망소이, 개똥이, 마당쇠, 돌쇠, 삼월이, 오월이... 등등)

하지만 임진왜란 이후, 공명첩의 남발과 광작과 상업 경제의 성장은 신분제의 문란을 불러왔습니다.

벼락부자에 짝퉁 양반들이 난립하면서 호적이나 족보에 문제가 많아진 것이죠.(대한민국 국민의 99%가 자기네 조상이 양반이라 주장하지만 과연...^^;;;)
조상이 중국에서 넘어왔다느니, 실은 당나라 황실의 후예라느니... 하는 이야기들도 당대에 버젓한 가문으로 위신을 찾기 위한 명분일 뿐 진실인 경우는 극히 드뭅니다.(노비였다지만 원래는 양반이었다는 소설도 나오고...;;;)


이건 성명의 변화는 비단 한국이야기만 아닙니다.
유럽의 경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아놔, 후손들이 게르만 이름이나 유태인 이름을 쓰고 있어...OTL


 

기독교가 유입되고 유럽에는 유태식 성씨나 이름들이 많이 퍼졌습니다.
존이라든가, 아담이라든가, 요한이라는 이름들이 대표적인 사례인 것이죠. 이것이 기존의 게르만 성씨나 로마 성씨들과 뒤섞이면서 변화해갔고, 가문의 결합은 성씨의 결합과도 이어지면서 다체로운 성명들을 만들어 냅니다.

 

이런 문화적인 격변 속에서 후대에 부여계 성명이 온전히 보전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게 순진한 것입니다.

   

생존을 목적으로 바꾸거나, 생활을 목적으로 바꾸거나, 심지어 종교적이나 학문적인 이유로 성명을 바꾸는 경우는 굉장히 많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꼭 그게 역사에, 족보에 기록되지 않은 일이라해도 충분히 가늠해 볼 수 있는 일이지요.

 

더구나 옛날에는 아버지 성씨를 아들이 꼭 쓴다는 법도 없었습니다.

우리 아빠가 해씨였지만, 난 고씨로 바꿨지
(이미지 출처 : MBC 드라마 '주몽')



위의 고주몽도 그렇고, 견훤의 아버지 이름은 아자개였습니다.
후고구려를 세운 궁예는 자신을 버린 신라왕실을 저주하며 스스로 김씨 성을 버렸지요.


아직 성리학적인 유교 사회체계가 장악되지 않은 시대에는 흔한 일이었고, 유교 사회가 정착된 이후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공명첩을 샀든, 전공을 세웠든... 자신의 성씨를 양반들 비슷하게 김씨, 박씨, 이씨로 뽑고 싶어하지, 특이하게 공갈씨, 황달씨...같은 창조적인 이름으로 할 사람은 없는 겝니다.
오히려 특이한 성씨일 수록 윗대 조상을 알기가 편하기에 조상이 대단하지 않은 집안은 튀는 성씨를 써서 좋을 게 하나도 없었지요.

여기에 동네 가난한 선비네 족보에 이름 올리려고, 돈을 줬다면 그 선비의 동생이나 친척으로 선비의 성씨를 따라가는 것이 당연했습니다.

 

 

과거 일본이 강압적으로 문화말살을 하려고 창씨개명을 했던 흔적은 아직도 우리네 이름들에 일부 남아 있습니다.
우리네 할머니, 어머니들의 이름이 말자, 복자, 길자, 숙자...등등으로 불렸던 것은 일본식 이름들의 흔적인 것이죠.

 

아마 고대에도 비슷한 조치가 있었겠지요.

섬나라의 경우처럼 이름 안 바꾸면 배급 안 하지는 않았겠습니다만,

양반님이 '개똥아~'...라고 부르는데, 자신의 이름이 뽀대나는 몽골식 '티무르'라 해봤자 소용이 없는 것이죠.

결국 기록도 글자를 아는 양반님이 남기기에 개동이나 개시로 남지, 티무르로 남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하멜일당이 조선에서 호패를 받았을 때도 이름이 완전히 조선식이었고, 그 전에 벨테브레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렇게 귀화인의 한국식 성명 전환은 현재도 벌어지고 있습니다.

구리 신씨의 시조 신의손


 
요새야 다문화에 국제화 시대라서 이름을 데니스라고 하던, 찰스라고 하던 요한이라고 하던 아무도 상관을 안 합니다.
한동안 순한글 이름도 유행했습니다만, 그때 이름지어진 사람들은 현재에 이름을 바꾸고 있습니다.
방송가에 연예인들이 특이한 이름을 갖고 있지만, 그들의 진짜 이름은 따로 있습니다.

아무래도 한번 문화적으로 굳어진 체제는 바꾸기 힘든 모양입니다.
이렇게 천천히 바뀌어가다가 현대와는 전혀 딴판인 성명들이 먼 후대에 대세가 될지도 모르지만 말입니다. 
 

 

출처 : by 초효님이  2009/12/28 13:09 에 블러그 kezs.egloos.com/1606380 에 올린글

 

 

출처 : 한국족보연구소
글쓴이 : 봄내인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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