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류씨

[스크랩] Re:문화 류씨 류관(柳寬)의 배위에 관하여 후손과 서신교환.

ryu하곡 2011. 2. 14. 20:21

Date 08/08/28 16:47 (#338) reply delete modify 211.173.147.188
Name 안택수 atskown@hanmail.net
Subject 문화류씨 13세 류관(휘 寬)공의 配位를 알고 싶습니다.
Comments  
류주환교수님 안녕하십니까?
저는 얼마전에 귀 문중의 시조관련하여 좋은 편지를 주신바 있는 광주안가 입니다.

귀 문화류씨 선대 관련하여 문의 드립니다. 이부분 교수님이 천착하셔서 관련기록(족보등)을 보시는지 모르나 좋은 안내를 청합니다.

우리 광주안씨 18세에 휘 기(器. 고려말에 판전농시사)선조는 저의 직계선조등 3분의 아드님만 족보에 기록되어 있고 (이 세 아드님의 후손이 광주안씨의 대부분입니다.)
따님은 기록이 없습니다.
그런데 문중에서 따님이 문화류씨 13세 문간공 류관공의 배위라 하니 문화류씨 족보를 열람치못하니 알기 어렵습니다.

귀 문중의 족보기록에 혹 문간공의 배위로 廣州安氏가 있으면 그 父등의 기록이 있습니까?

광주안씨 문중에 조선조 영조. 정조때 역사학자인 安鼎福공이 직접 편찬한 족보에는 柳夏亭공의 배위에 그 本이 없어 모르겠다는 언급이 범례에 있을뿐 기록이 없습니다.

두루 살피셔서 회신을 주십시오.
 
#338 ..... [by: 운영자] 08/08/31 11:02 (#339) reply delete modify 203.235.105.18
 
문화류씨 휘 관(류관)은 하정공파 파조이며, 한양 천도에 중요한 역할을
한 분입니다. 서울의 도로에 '하정로'가 있는데 그 분을 기려 만든 것입니다.

족보에 하정공의 부인으로 두 분이 나오는데 첫째가 광릉안씨이며 둘째가
풍주이씨입니다. 광릉廣陵은 광주廣州를 말하니 첫째 부인이 광주안씨가 맞는
것으로 보입니다.  

족보에 나온 광릉안씨 부인의 기록은 다음과 같습니다. 종사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RE: 류주환교수님 감사합니다. 비슷한제목검색

보낸이
은밤 주소록 추가
08-09-01 01:04
세부정보
 

안녕하세요.


금년에 나온 문화류씨세보 총목(總目)에 나온 기록을 보면

1862년에 신석우(申錫愚, 1805(순조 5)∼1865(고종 2). 조선 후기의 문신)께서

"우의정문간류공寬신도비명"을 쓴 것이 나옵니다. 자신을 예조판서홍문관제학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 부인에 관한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배위는 광릉군부인 안씨인데 3남을 생하니 장자는 이조참판 孟聞이요,

次는 호군 仲聞이요, 次는 판서 季聞이니 諡는 安肅이며, 후배는

풍주군부인 이씨이니...."


가정보는 제가 직접 갖고 있지 않아서 도서관에서 확인해야 합니다.

언제 시간이 나면 찾아보겠습니다.


한 집안(A)의 족보의 내용이 아무런 검증이 없이 다른 집안(B)의 족보에

들어가고 또 그것이 다시 A 집안의 다음 족보에 확대되어 들어가는 일은

실제 있었습니다. 그래서 항상 비판적으로 족보를 보는 것이 올바른 태도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어디 족보를 살펴보았다는 기록 같은 것이 없이

기록되어 있는 것을 보면 특별히 의심할 끄나풀은 보이지 않습니다.

가정보에 어떻게 나와 있는지를 확인하면 문제는 확실해질 것입니다.


뭐라도 듣거나 아는 것이 생기면 연락드리겠습니다.


그럼 안녕히 계십시오.






---------[ 받은 메일 내용 ]----------
제목 : 류주환교수님 감사합니다.
날짜 : 2008년 8월 31일 일요일, 오후 12시 26분 10초 +0900
보낸이 : "노송" <atskown@hanmail.net>
받는이 : "은밤" <mykenji@hanmail.net>

학문에 바쁘신데도 큰 성의로 회신 주셔서 감사합니다.

 

문중사람을 만나 담화중에

"문화 류씨의 顯.名祖인 문간공. 드러난 조선조 초기 청백리인 柳寬공이 우리 판전농시사 선조의 사위다" 라는 얘기를 하기에,

대종회에서 직분을 가지고 본사해 온 분이 무슨 풍설같은 말인가? 했지요.

 

집에 와서 족보. 다른 문헌을 보아도 의문이 나지요.

판전농시사공 휘 器 선조는 전해 오는 逸事가 많아 알려진 분이고 특히 그 아드님 3분은 광안에서 대다수 후손을 점하는 소목인데? 왜 족보나 다른기록에 따님 기록은 일체 없는가?

뿐만 아니라 하정공은 望族의 顯官인데 우리 족보나 다른 기록에 없을가?

 

그래서 교수님에게 문의한 것입니다.

 

하정공에게 두분의 배위가 계시고 청백리로서 逸事나 문중에서 초배인? 광주안씨부인은 기록이 드문듯합니다.

하정공은 1346년생이면 저의 직계 선조인 휘 省(사간공)께서 1344년생이니 동시대이고 관직도 같은시기에 하신 분들인데 생시에 전혀 교분이 없었는가?

 

저 개인으로는 의문이 많습니다. 문화류씨 가정보(嘉靖譜. 1565)에는 어떤 기록인지요?.하정문집에는 어떤가?

 

어떤 신뢰가능한 고증이 되면 우리 18세 선조의 따님으로 당당히 기록하면 좋겠습니다.물론 대종회의 결의로,

 

한편. 휘 綏(훈을 우리는 유 라 함)선조는 광안의 14세로 경남 함안에 처음 정착한 분이고.이분의 5세손녀가 되는 분이 그 광릉군부인 안씨가 맞고요. 휘 壽.휘 海. 휘 器. 이분들이 다 曾. 祖. 父가 됩니다 족보기록에는 고려후기에 관직을 하신 분들로 기록이 있습니다.

 

거듭 친절한 안내 감사합니다.  안택수.

출처 : 廣州 安 씨
글쓴이 : 안택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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