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시열이 장희빈 아들 경종을 원자로 하는 것을 반대하여 장희빈의 미움을 받아 제주도로 유배 가면서 쓴 시를 보려 완도 보길도에 갔다.
숙종조에 송시열의 아들 송기태의 처갓집이 전남 영암군 신북면 모산리(당시는 나주목)인데 송기태의 부인 문화류씨(대승공 20세 사교당 준의 손녀)의 심정이 오직하였겠는가?
당시 부인 문화류씨(대승공22세, 준→신오→女 宋基泰) 시아버지 송시열의 글씨를 보기 위해 보길도 “송시열 글씐바위”를 보고 왔다.
우리나라 3대 정원의 하나인 세연정(송시열 정적 윤선도 정원)
송시열이 83세에 쓴 시
八十三歲翁 (팔십삼세옹) 여든 셋 늙은 몸이
蒼波萬里中 (창파만리중) 푸른 바다 한가운데에 떠 있구나
一言胡大罪 (일언호대죄) 한마디 말이 무슨 큰 죄일까
三黜亦云窮 (삼출역운궁) 세 번이나 쫓겨난 이 또한 힘들었을 것인데
北極空瞻日 (북극공첨일) 대궐에 계신 님을 부질없이 우러르며
南溟但信風 (남명단신풍) 다만 남녘 바다의 훈풍만 믿을 수밖에
貂裘舊恩在 (초구구은재) 담비 갖옷 내리신 옛 은혜 있으니
感激泣孤衷 (감격읍고충) 감격하여 외로운 충정으로 흐느끼네
* 三黜亦云窮 : 노나라 유하충의 고사
* 초구 : 임금이 내리신 옷
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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