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류씨

[스크랩] 선조님 발자취를 찾아서( 유적지 참례기)

ryu하곡 2017. 1. 27. 19:16

 

선조님 발자취를 찾아서

- 유적지 참례기 (2011.4.19〜4.20) -

밤사이에 비가개이고 상일동의 이른 아침은 맑고 밝았다. 상일동 해천제에 도착하니 06:30분, 출발 30분전이다.

 

출발에 앞서 유길종 대종회장님을 비롯한 부회장과 어젯밤 관리사에서 주무신 지방종친들과 함께

이곳 선조님께 우리들의 오가는 길의 안녕과 축복을 기원하는 참배를 올렸다.

묘역을 돌며 예를 갖추고 해천재 앞마당에 이르니 경향 각처에서 오신 종친들이 서로 인사를 나누며

도로변에 대기하고 있는 버스 쪽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버스 앞 유리창에 붙어있는 ‘강릉 유씨 선조님 유적지 참례단’ 표지 문을 보는 순간 공연히 마음이 설레이는 가운데

버스에 올라 자리에 앉자마자 오늘의 일정표를 펼쳐봤다.

 

충남 공주의 삼충사(三忠祠) 참례를 시작으로 부여의 삼대종비,

전북 고창의 삼대종숭모비(三大宗崇慕碑)와, 조산사(造山祠) 참례,

전남 장흥의 참의공 선조의 묘역 까지 천릿길을 숨 가쁘게 달려야 할 강행군 코스이다.

07시10분경 상일동을 출발하여 경부고속도로를 탄 우리버스는 제1 참례지역인

충남 공주시 계룡면의 삼충사(三忠祠)를 향하고 있었다.

버스가 도심권을 벗어나고 있는 동안 준비된 김밥과 음료수 과일 등으로 차중 아침식사가 시작되자,

돌연 어허! 마누라 밥상머리보다 훨씬 나았네‼ 하는 어느 종친의 큰 소리에 다들 폭소가 터져 나와 더욱 입맛을 돋우게 했다.

이어서 유길종 대종회장님의 인사 말씀과 대종회 부회장 각시도지회장 이사님 등 참여종친 한분 한분에 대한 소개를 마치고서

화합과 전진을 다짐하는 큰 박수로 오늘의 일정이 시작되었다.

 

어느덧 우리 차는 충남 도계를 벗어나 공주시 계룡면에 들어서니 차창밖에 펼쳐진 짙은 봄기운이

충절의 향기와 함께 우리들의 가슴팍을 파고 드는 듯 하였다.

9시10분경 봉명리 마을 입구까지 마중을 나오신 병사공파 14대종손인 유의종과 유재민 종친의 안내를 받아

삼충사(三忠祠)에 도착 하였다.

먼저 대종회장을 비롯한 몇 분은 의관을 갖추고 참례단 전원과 함께 경건한 마음으로 제례를 올렸다.

삼충사(三忠祠)는 삼충신(三忠臣)을 기리기 위해 건축을 시작하였으나 재정 부족 등으로 어려움을 겪다

2007년에 준공되어 첫 제향을 공주유림 향사로 지낸 후 매년 음력 2월27일에 제를 모신다고 한다.

삼충신은 의당대남(毅堂大南), 송헌일남(松軒日南), 강재기남(剛齋起南) 삼형제를 말 하는데

모두 무과(武科)에 합격한 분들로서 1636년 병자호란(丙子胡亂)에 참전하여 의병을 거느리고

지금의 경기도 시흥지방인 금천(衿川) 전투에서 두 분 형께서 먼저 전사하였고,

뒤 이어 강재께서도 머리를 적의 칼날에 잃어, 그 머리를 말이 물고 슬피 울며 집으로 돌아와 죽으니

주인의 계하에 장사하였다 한다.

모두들 숙연한 마음으로 재민종친님의 설명을 들으며 비문을 보고 있는 순간 “위대한 조상님의 자손이다”는

긍지를 느끼게 하였다.

 

삼충사 참배를 마친 우리 참례단은 09:05분경 재민종친 등의 환송인사를 받으며

다음 목적지인 부여의 삼대종비(三大宗碑)를 향하여 출발하였다.

차에 오른 우리 일행들은 삼충신(三忠臣) 선조님에 대한 감회가 좀처럼 사라지지 않은 듯 다들 조용하기만 하다.

• 사람은 나라위해 죽고 말은 주인위해 죽었으니

• 사람이 충성하니 말도 충성 하였도다.

• 말이 사람에게 배워서......

라는 삼충사 비문에 있었던 몇 구절을 되새기며 약 40여분을 달려오니10:20분경 성조삼대종비(聖祖三大宗碑)가 있는

충남 부여군 부여읍 능산리 오석산에 도착하였다.

우리들은 삼대종비 앞에서 단체 묵념과 기념사진을 촬영하였다.

삼대종비는 전북 고창, 충남 부여, 강원 춘천 등 세 곳에 세워져 있는데,

• 한태조고황제(漢太祖高皇帝) 휘(諱) 방(邦)과

• 송조병부상서(宋朝兵部尙書) 문양공(文襄公) 휘(諱) 전(荃)과

• 조선개국공신 문희공(文僖公) 휘(諱) 창(敞)

세분 조상님의 행장이 기록된 비(碑)로서 종친이 일체가 되어 숭조정신으로 조상의 업적을 찬양하고

강릉 유 씨 후손된 긍지를 널리 알리고자 세운 비이다.

그러나 역사적 가치와 강릉 유 씨 종중의 자랑거리인 부여의 삼대종비는 야산에 방치된 느낌을 받았다.

몇몇 종친들은 벌초가 제때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 같다며 많은 아쉬움을 남기기도 하였다

 10:40분 우리버스는 전북 고창을 향하여 출발하였다.

차에 오른 종친들은 부여의 삼대종비 관리에 실망을 하였는지 모두들 씁쓸한 표정들을 짓고 있었다.

충절의 고장이라는 말들이 무색해 지는 듯 한 느낌이 들기도 하였다.

 

무심코 좌우 차창 밖을 바라보자 논두렁 밭두렁에서 나물케는 아낙들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남쪽의 봄은 정녕 아낙들의 나물바구니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일까!

조동 총무님이 마이크를 잡고서 "지금 우리 버스 앞에 오토바이 한 대가 우리를 안내하고 있는데

저분이 이 지역에 살고 있는 찬식원로님 이라고 말씀하셨다. 밖에서는 들을 수는 없겠지만

77세의 노장 원로님의 헌신 봉사에 감사의 박수를 보내기도 하였다.

11:10분경 우리는 고창군 아산면 중월리 상복마을에 도착하였다.

이곳의 유씨삼대종숭모비(劉氏三大宗崇慕碑)는 역사성이나 규모면에서도 돋보였고,

종파의 선조16위 위패를 모신 제실도 있었다.모두들 삼대종숭모비앞에 서서 묵념을 올리고 기념촬영도 하였다.

이곳 상봉마을은 전주최씨가 최초로 터를 잡았고 1547년경 강릉 유 씨가 입주하였으며,

1690년경부터 유 씨 집성촌(좌랑공 60여 가구)을 이루고 있다한다.

 

약 30분을 달려12:50분경 버스는 고창군 고수면 하두치 마을에 있는 조산사(造山祠)에 도착 하였다.

조산사는 앞에 호수를 내려 보고 있는 전형적인 배산임수(背山臨水)의 명당자리였다.

회장단이 의관을 갖추고 단체로 제례를 올린 후 기념사진도 촬영했다.

정읍에서 오신 본회 원로이신 재일종친님께서 감사의 인사말씀과 조산사의 유래에 대한 설명이 있었다.

조산사는 1978년에 창건된 사당으로 문희공 유창선조님을 주벽으로 봉안하고

길사순(吉師舜 治隱 吉再의子 문희공의 수제자)과 은재 유한랑(劉漢良 茂長縣監, 壬亂功臣 진주성에서 전사)

세분을 모시는 곳이다.

조산사 건립 배경은 영조38년(1762년) 유림들의 총의로 문희공 선암선생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하여

검암서원(儉岩書院)을 세우고 매년 향사하여 오다가 대원군 서원 철폐령으로 회철 된 후,

1899년 그 터에 정산사를 세워 향사를 해오다, 향중유론으로 지금의 조산사를 세우다.

 

조산사 참례를 마친 우리 일행은 점심시간이 한참 지난 오후 2시경 굴비의 주산지 영광 법성포에 도착 하게 됐다.

우리는 계절 따라 조기가 산란을 위해 떼 지어 모여 든다는 칠산바다를 바라보며 굴비정식으로 이름난

토우식당을 찾아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가게마다 주렁주렁 매달려있는 굴비 두름은 굴비산지란 풍경을 돋보이게 한다.

고창에서 가져온 막걸리와 복분자술을 곁들인 명품 굴비정식은 우리를 감탄하게 만들었고,

역시 음식은 전라도라는 말들이 여기저기서 쏟아져 나왔다.

 

오후 3시경 우리버스는 법성포를 떠나 서해고속도로에 올라 약 30여분 달려오니,

유서 깊은 목포의 유달산이 우리를 반기는 듯 우뚝 솟았있고 남도의 갯내 움이 코를 자극하였다.

우리는 장흥으로 가는 도중 유길종 대종회장이 공직에 첫 발을 시작했다는 영암군 미암면(길암천)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농사철이 시작된 들판을 지나 꼬불꼬불 산길을 타고 어느 고개에 이르자 “길암천 유래비”가 우리를 기다린 듯 한눈에 들어왔다.

차에서 내린 우리들은 앞 다투어 비문을 읽으며 청년 유길종의 남다른 봉사정신에 모두감동을 받은 듯하였다.

반세기를 멈추지 않고 흐르는 약수를 쪽박에 받아 목을 축이니 감로수가 따로 없었다.

 

 

■길암천의 유래

 

 

4시 40분경 우리버스는 미암면장과 유지 몇 분의 환송을 받으며 장흥을 향하여 출발하였다.

버스 안에서 유길종회장님은 20대 총각시절 낯설고 물설던 이 지역에서 봉사와 질서에 헌신했던

감회가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 듯 길암천에 얽힌 일화 한 토막을 소개하였다.

어느 장날, 아낙 서넛이 쉼터에 앉아 주고받는 말,

• 웬 우물이야? 누가 이렇게 좋은 일을 했당가?

• 미암지서장이 팠다요!

• 아! 그분 나중에 대통령 되겠네!

여러분! 그 아줌마들 말이 맞지 않았소?

내가 劉나라 대통령 아니요?

다들 맞다맞다 하며 한바탕 웃고 나니 금세 장흥군 경계를 넘어서 우리 버스 앞에는

하얀 승용차 한 대가 우리를 안내하고 있었다. 역시나 여기도 노장 유동종 원로님이시다.

 

오후 17:30분경 장흥읍 평화리에 다다르니 차도 우측 오르막길에 ‘강릉유씨참의공종중세장산’이라는

표지가 큰 바위에 새겨져 있었다.

 

약 5분정도 올라가 참의공 할아버지 묘역 두 곳을 참배하고 내려왔다.

참석자들 모두는 묘소를 잘 가꾸어 놓은 것에 대해 감탄을 했다.

이어서 유동종 원로님의 안내를 받아 억불산 입구에 이르러 큰 차는 올라갈 수 없는지라

이곳 종친들이 동원한 승용차와 소형트럭등 10여대에 분산하여 산길을 오르니

이곳이 그 유명한 우드랜드라고 하는 편백나무 숲 산이다.

또한 이곳에는 정남진 천체과학관이 산 정상에 동그란 모습으로 우뚝 서 있었지만,

그곳은 가보지 못하고 3㎞정도 더 올라 참의공조의 아들인 덕창이하 자손들의 묘역이 잘 가꾸어 있었다.

이곳에서도 위, 아래 두 곳에 계신 선조님께 참배를 하고서 장흥종친들과 서로 인사를 나누었다.

시야가 툭 터진 이 높은 정상에 어떻게 조상님들을 모셨는지 궁금할 정도였다.

 

 

우리 일행은 다시 마을로 내려와 평화리 마을에 위치한 제실을 찾았다.

이곳은 원모재에 모시던 천방공 제씨 산제공을 비롯한 8위와 치경재에 모시던 참의공 할아버지 후손들 9위를 합하여

현재 17위를 모신다고 한다.

원모재는 마을 한가운데 자리 잡고 있으며, 정리정돈이 잘되어 있을 뿐 아니라

강릉 유 씨 종중의 얼과 역사를 잘 보여주고 있었다.

전국에서 오신 우리 참례단원은 장흥종중의 묘소관리와 재실관리에 감탄과 찬사를 보냈다.

이렇게 하루를 부지런히 답사하고 나니 어느덧 해는 져서 어두움이 내려앉는다.

우리 일행은 최불암이 매스컴에서 홍보했다는 장흥의 유명한 음식점 금호식당으로 이동했다.

장흥의 종중회원들의 환대 속에서 참의공 종중에서 준비한 저녁식사는 장흥의 대표적인 음식이 아닐까 한다.

홍어삼합에 육회 등 명품요리는 오늘의 피로를 풀게 하고 내일의 활동에 만전을 기해줄 것으로 본다.

오늘의 일정은 너무도 많은 것을 보고, 배우고 느끼게 하는 것 같았다.

특히 장흥종중의 조상님을 섬기는 자세, 종친을 사랑하는 따뜻한 인정,

화합하고 단결하는 아름다운 정신을 장흥에서 배우고 가는 것 같다.

우리 일행은 장흥군 안양면의 옥섬 파크호텔로 이동하여 숙소를 정하고 하루의 피로를 풀게 됐다.

 

아침 일찍 잠을 깨어 호텔 창밖을 바라보니 바다풍경이 시야에 들어온다.

큰 산을 떠다 놓은 듯한 앞 섬들이 국립 해양공원에 속한 완도, 고흥이란다.

전복죽으로 아침식사를 마친 우리 일행은 어제의 강행군에도 피곤한 기색 없이 모두 싱글벙글 차에 올랐다.

오늘은 어린 시절 수학여행이라도 떠나는 듯 들뜬 기분이 감돈다.

2013 ‘순천만 국제 정원박람회’와 2012 여수세계박람회 개최지 견학을 하고

대종회장님의 고향인 여수에서 싱싱한 해산물로 맛있는 점심을 먹게 된다는 기대도 있거니와

월계사와 송계서원 참례를 마치면 사실상 이번행사가 성공적으로 끝을 맺는다는 보람 때문이다.

 

08:20분경 옥섬을 출발하여 순천만 갈대숲을 향하였다.

순천만은 광활한 갯벌과 드넓은 갈대밭으로 이루어진 자연의 보고이다.

우리나라 최고의 단편소설 김승옥 <무진기행>의 무대이기도 하고

2006.1.20 연안습지 최초로 탐사협약에 등록된 대한민국 대표 생태 관광지이라.

가을 무렵 갈대꽃이 피고 칠면초가 붉은빛을 띠며 철새가 날아오르는 광경은

전국에서 가장 빼어난 자연관광을 자랑하고 있다 한다.

 

순천만 갈대밭에 도착하니 순천시의회 부의장 유종완 종친이 우리를 맞이했고 많은 선물까지 전달했다.

덕분에 우리들은 전기열차로 약 2Km에 이르는 갈대밭을 감상할 수 있었으며

이지역이 낳은 문학가 정채봉, 김승옥 두 분의 문학관을 둘러보게 되었다.

70만평에 이르는 늪지에 각종 철새들이 12월과 1,2월에는 수백 마리가 날아들어 장관을 이루는데

올해는 여수 순천 고속도로공사 소음 때문에 새들이 찾아오지 않았다는 해설자의 설명이다.

 

순천만을 떠나 정오경 여수에 도착하자 여수시 문화관광과 박정희 여직원이 우리를 안내하여

여천공단을 한 바퀴 둘러 신설중인 이순신대교를 지나 엑스포 홍보관에 이르르니,

여수종친회에서 “강릉유씨대종회 임원단 여수방문 환영”이라는 플랜카드를 들고 우리를 환영하였다.

 

이어서 홍보실장의 설명을 들으니 100개국 참가에 800만관광객을 유치한다는 목표로 행사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고 한다.

현재 97개국이 참가 엔트리를 보내왔다는 해설자의 전언이다.

곧 이어 여수시의회 김영규의장이 마련한 오찬장(다다한정식)에 들어서자 여수시의회 명의로

 “강릉유씨대종회 임원단의 여수방문을 환영합니다.” 는 플랜카드가 걸려 있었다.

 

 

오찬장에는 여수시장님과 여수시의회 의장등의 환대를 받으면서 간단한 소개와 인사말씀이 있는 후

엑스포홍보 영상물을 10여분 감상하고 맛있는 해물요리와 푸짐한 반찬으로 점심을 먹었다.

20여 년 전에 대종회장님이 이곳에서 여당국회의원으로 출마하여 황색바람에 쓴맛을 본 경험이 있다는

전언과 함께 대종회장께서 고향사랑 지역사랑의 참 인물이란 인물평과

이 고장의 후배들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란 것을 새삼 깨달았다.

 

우리 일행은 오후 2시30분경 여수시장님 시의장님 종친회의 환송을 받으며

주신 돌산김치와 멸치 등 많은 선물 보따리를 들고 석별의 악수를 나누며 차에 올랐다.

 문자 그대로 참! 아름다운 여수, 그리고 내년 세계 박람회준비에 바쁘게 움직이는 여수시민들을 뒤로 한체

우리버스는 순천의 월계사(月溪祠)를 향하여 달리고 있다.

다들 ‘너무 좋다’며 희색이 만연한 가운데 그래도 아쉬움이 남아 있는 듯 내년 여수박람회에

우리대종회 차원에서 꼭 와야 한다고 소리 높인다.

어느덧 우리 버스는 1시간여 달려 오직 하늘만 보인다는 섬계리 매봉산 계곡에 위치한 월계사에 도착했다.

유달모(전, 면장) 승봉(농협지소장)종친의 안내로 향사에 참배하고서, 신선한 딸기와 방울도마도등

준비된 다과로 담소를 나누었다.

 

 

월계사는 1959년 순천유림이 건립한 곳으로 문희공 유창(劉敞)선조를 주벽으로

천방공 유호인 사산공 유덕소 선조님을 배향하고 이분들의 유덕을 기리며 매년 2월20일에 향사한다.

 

 

어둠이 내려앉는 오후 7시에야 장성의 송계서원에 도착하여 유관종 도유사와 기종종친의 안내를 받아

모두 경건한 마음으로 참배를 올렸다.

송계서원은 문희공선조의 현손 되시는 휘 세분(世玢)선조께서 진원현감으로 계실 때

고조부이신 문희공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고자 1492년에 세웠으나 임진왜란시 소실되고

정조22년 1798년에 복원되었다가 고종5년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 의하여 회철된 후

1924년 지금의 서원이 복원되어, 문희공선조를 주벽으로 5현인의 선조를 모시며 매년 3월15일에 향사한다.

송계서원 참배를 마치고 내려오는 길에 최근 발견했다는 갑신정변때 활약한 유대치선조(표석: 백의정승)의 묘에 들려 참배 후

 

 

문희공선조의 증손 성재공 휘 용하(用何)선조의 설단 앞에서 참배를 하고서,

어제부터 오늘까지의 1박2일간의 선조유적지 참례행사를 마무리 하게 되었다.

어둠이 짙어지는 여덟 시경 유재식. 유관종. 유기종 장성종친들과 작별을 하고

서울로 돌아가는 우리들의 가슴에는 위대한 조상님의 얼과 축복이 가득 채워진 느낌을 받았다.

이번 행사를 통하여 조상님의 위업을 계승하고 그 위대함을 자손대대 전하여 후손들의 귀감이 되게 함은 물론,

화합과 전진으로 조상님께는 기쁨을, 후손들에게는 축복받은 영예로운 가문을 지켜 나가겠다는 다짐을 하면서

서울 상일동에 도착하니 밤11시가 되었다.

모두들 아쉬운 작별을 고하고 귀가 하였다.

이러한 기회를 마련해 주신 강릉 유 씨 대종회장 유길종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유영철 씀

 

 

 

 

 

 

 

출처 : 휘문볼재61
글쓴이 : 유영철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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