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류씨

[스크랩] 차원부 증시

ryu하곡 2016. 6. 24. 09:06

1. 차원부 시호를 받아들이는 연시행사 


동부승지 이현묵(李顯默)이 이조의 말을 아뢰기를(以吏曹言啓曰) 문절공의 시호를 받은(贈諡文節公) 차원부(車原頫)의 시호를 받아들이는 연시행사(延諡)를 1804년12월12일(來十二月十二日)에 전라도 순천땅에서 행한다고 (定行於全羅道順天地云矣) 아뢰니(敢啓) 알았다고 전하셨다(傳曰知道) 

정2품 이상의 고관이나 충신 및 공신의 사후에 시호(諡號)를 내려주는 것을 증시(贈諡)라고 하였다. 시호를 받을만한 사람이 죽으면 행장(行狀)을 작성하여 예조에 제출하였고 예조에서는 행장(行狀)을 검토한 후 봉상시로 보냈다. 봉상시의 수장인 봉상시정이 행장(行狀)을 참고하여 시장(諡狀)을 작성하는데 시장(諡狀)은 예조판서나 예문관 직제학 등도 작성하였다. 시장(諡狀)은 행장(行狀)과 비슷하게 행적을 기록하였는데 시장에는 추천하는 시호 세 개를 기록하였다. 작성한 시장은 홍문관과 의정부를 거쳐서 이조에 넘겼고 이조에서는 추천 받은 세 가지의 시호단자를 작성하여 국왕에게 보고하여 국왕으로 부터 시호를 확정을 받았다. 국왕이 시호를 확정하면 사헌부와 사간원의 관원들은 증시에 동의하는 문서를 작성하였다. 사헌부와 사간원의 관원들이 동의하는 문서를 작성하고 나서야 시호교지를 작성할 수 있었고 후손들이 시호를 받아들이는 준비가 끝났을 때 연시행사를 거행하였다. 그러나 행장(行狀)을 작성할 여력이 되지 않는 경우에는 시장(諡狀)없이 바로 증시(贈諡) 하기도 하였다. 

 2. 차원부의 증시교지


고려시대 간의대부를 지낸 차원부(行高麗諫議大夫車原頫)는 

숭정대부의정부좌찬성에 증직하였고(贈崇政大夫議政府左贊成) 

문하시중에 추가 증직하였는데(加贈門下侍中) 

문절의 시호를 내린다.(贈諡 文節公者) 

배우기를 부지런히 하고 묻기를 좋아해서 

“문”이요(勤學好問曰文) 

임금을 섬기고 충성을 다하여 

“절”이다(事君盡忠曰節) 

경태7년5월(景泰7年5月:세조2년, 1456년)


3. 증시한 시기와 연사행사의 시기가 다른 이유 
증시한 시기와 연시행사 시기가 해를 달리하는 것은 일반적일 수도 있고 상황에 따라서는 아주 오랜 시간의 차이가 나기도 하는데 차원부의 증시교지 날인 시기와 연시행사 시기가 다른 이유에 대해서는 깊은 연구가 필요할 것으로 보여진다. 차원부의 시호교지는 1804년 연시행사를 통해서 전달되었는데 시호교지는 1456년에 작성하였다. 시호교지를 조작한 것이 아니라면 1456년에 작성한 증시교지를 1804년에 전달했거나 1456년에 전달한 것을 모르고 1804년에 한 번 더 전달하였던 것이 된다. 

1804년 시호를 받아들이는 연시행사를 진행하면서 전해 받은 진본 시호교지를 숨기고 가짜 시호교지를 만들어야 하는 이유가 있는지 의문이다. 시호는 연시행사를 통해서 신위 앞에 전달한 후 부터 사용할 수가 있었는데 차원부는 이미 증시는 되었지만 국가적인 변고 등으로 신위가 시호를 전해 받지 못 했기 때문에 시호를 내려달라는 주장을 했었다. 이러한 믿음은 18세기 차원부 설원록을 신뢰하였던 사대부가에서 통용되고 있었다. 그래서 1804년에 증시 문절공 차원부의 연시행사를 진행하는 것은 모든 사대부가가 알았던 것으로 판단해야 한다. 그러므로 이 때 전해 받았던 시호교지를 숨기고 1456년에 작성한 것처럼 증시교지를 위조하여 후세에 전하였다는 판단은 다시 한번 숙고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되어진다. 

차원부의 시호교지는 1456년에 전달한 것을 모르고, 1804년에 한 번 더 전달하였을 수도 있을 것이다. 다만 연시행사를 진행하기 위해 오랜 노력을 하였는데 이전에 시호교지가 종가에 전달되었던 것을 모를 수는 없을 것 같다. 또한 그렇게 한 번 더 전해졌다면 1804년 전해 받은 시호교지도 전해져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든다. 

시호교지를 조작하지도 않았고 이전에 시호를 내려 받지 않았다면 1456년에 작성한 증시교지가 1804년에 전달된 것이 된다. 1456년에 작성한 증시교지가 1804년에 전달된 상황을 연출하기 위해 1804년에 증시된 교지를 버리는 막장 드라마를 연출하였다고 주장할 수는 있겠지만 차씨문중에서는 단 한번도 1456년에 작성한 증시교지가 1804년에 전달된 상황을 연출한 적이 없고 왜 그런지 조차 모르기 때문에 아무런 주장도 하지 않았다. 이유를 모르는 그 이유는 선대가 막장드라마를 연출하여 후대에 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1456년에 작성한 증시교지가 1804년 연시행사를 통해서 전달된 것으로 판단한다. 

1791년 규장각에서 간행한 차문절공유사 속에 수록된 규장각 제학을 지낸 황경원이 편찬한 사실 편에 의하면 차원부는 태종 때 문하시중에 증직되었고 세종 때 문절의 시호를 받았다고 하였다. 1804년 연시행사 이전부터 이미 증시를 받았다고 믿고 있었던 것이다. 1786년 9월 7일의 일성록 기록내용은 다음과 같다 “광주의 유학 유급 등이 상언에서 고려의 간의대부 차원부를 위해 시호를 주청하는 문제에 대해 해조로 하여금 품처하게 해 주소서.’라고 하였습니다. 차원부의 성대한 공렬에 대해서는 단묘조에 시호를 하사하는 명을 입기에 이르렀으나, 수백 년 동안 거행하지 못했던 일을 지금 가볍게 의논할 수가 없으니, 그만두는 것이 어떻겠습니까?”하여, 그대로 따랐다. 

조선중기의 사대부들은 고려시대 차원부는 간의대부를 지냈다고 믿고 있었고 정종께서 제사를 지내 주었다고 믿고 있었고 태종께서 문하시중에 증직하였고 세종이나 단종 시대에 시호교지를 작성했던 것으로 믿고 있었다. 그래서 시호교지를 조작하였다면 이러한 믿음을 반영하여 세종이나 단종 연간에 내려준 것으로 조작해야 하는데 세조2년에 증시교지가 작성되었다. 

간의대부는 문하부(門下府)의 정4품이고 문하부의 수장은 문하시중이며 그 다음은 문하시랑이다. 고려시대의 문하부(門下府)와 조선시대의 의정부가 유사한 기구이니 문하시중은 영의정과 유사할 것이고 문하시랑은 참찬이나 찬성과 유사할 것인데 차원부는 조선의 관직인 찬성에 추증하였다가 고려의 관직인 문하시중에 가증하였다. 증시교지를 조작하였다면 조선의 관직인 찬성에 증직한 내용은 포함할 필요가 없었을 것 같다. 그리고 정종께서 제사를 지내면서 추증을 하셨다면 좌찬성이 아니라 좌참찬이었을 것인데 세조 때 증시한 시호교지에는 좌찬성에 증직되셨다고 기록하였다. 만약 증시교지가 조작된 것이라면 이런 오류들은 걸러졌을 것이다. 

다만 세조 때 증시한 진본 교지라고 해도 어떻게 보존되고 1804년에 연시행사를 통해 전달될 수 있었을까? 1804년 연시행사를 진행했는데 일부 인사들이 위조라고 예측하고 있는 증시교지 이외에는 전승되는 것이 없다. 사헌부와 사간원에서 증시에 동의하는 증시문서도 없고 시장도 없다. 증시 동의문서는 조작을 위해서 버렸다고 할 수 있겠지만 시장은 봉상시를 통해서 전승되거나 시장은 보통 고관의 명문가가 작성하기 때문에 개인문집을 통해서라도 전승이 될 수 밖에 없는데 시장이 없다. 차원부는 행장까지 마련되어 있었고 시호를 내리는 것이 큰 사건이었는데 시장이 없다는 것은 시장을 작성할 필요가 없었다는 것일 것이다. 

1780년대에 차원부의 증시를 세 차례 요청하였는데 해당관청의 관료들과 정조는 오래되어서 알지 못하기 때문에 모두 거절하였는데 1790년대에는 규장각 관원들이 차원부와 관련한 여러 글들을 편찬하였고 더 이상 증시를 요청하지도 않았는데 1804년 연시행사를 진행하였다. 이러한 입장의 변화는 규장각에서 그간에 전승한 문서를 정리하였는데 1790년대에 차원부와 관련한 문서들을 발견하였기 때문인 것으로 파악한다. 그리고 그 속에 차원부의 증시교지도 포함되어 있었던 것으로 추측한다. 

차원부의 증시교지는 사대부가에 알려진 차원부의 역사와 구도는 비슷하지만 세부적인 내용은 차이가 있고 일부는 오류가 아닐까 생각되어지기도 한다. 그래서 만약 조작한 것이라면 이러한 오류는 걸러졌을 것이다. 증시교지는 작성은 하였으나 연시행사를 진행하지 못해서 궁궐내에 있었는데 규장각 관원들이 고서를 정리하면서 찾아낸 것이라 추측한다. 1790년대 전후한 시기에 이러한 문서들이 발견하였기 때문에 1780년대와 1790년대 차원부의 설원역사와 관련하여 관료적 입장이 달라졌을 것이라 생각하고 이를 반영하여 1804년에 연시행사를 진행하였을 것이라 판단한다.


출처 : 천 산
글쓴이 : 천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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