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류씨

[스크랩] 다른성씨들이 보는 문화류씨와 연안차씨

ryu하곡 2015. 1. 21.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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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문화류씨 - 뿌리 깊은 버드나무
글쓴이 : 杏枝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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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파일 글 입니다.

작성자가 검색을 허용한 카페 글입니다.

남의 씨족사에 올라타기가 어디 한두번이던가. (00 0씨와 00 0씨의 경우에 대한 어느 누리꾼의 의견)

2010.04.30 02:39

다보탑(dabo****)

카페매니저

http://cafe.naver.com/ahnssichangpa/5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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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씨 본관 및 족보와 관련한 글들은 요즘의 젊은이들이 기피하는 캐캐묵은 먼지덩어리일 뿐입니다.

그런데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을 아래의 글이 보여줍니다.

거짓된 내용으로 남의 성씨에 올라타기를 하는 족보를 기록한 웃대의 한학자(漢學者 )선비들과 오늘날 어느 성씨의 대종회분들에 비하면 이 시대의 젊은이들은 역사적 증거에 근거하여 명쾌하게 판단합니다.

앞으로는 이러한 판단들이 왜곡되어온 씨족사를 바로잡는데 큰 역할을 할 것으로 믿습니다.

그래서 희망을 갖습니다. 허락없이 옮김을 양해하시기 바랍니다.

두 성씨와 본관 및 관련자료는 익명으로 하였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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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 0씨의 카페에 가입하게 된 나만의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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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00 0씨나, 00 0씨가 아닙니다. 단지 역사학을 전공한 이로서, 한 달전 굳이 명기하지 않아도 아시리라 생각되는 한 가문의 내력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중국 황제로부터 시작하여, 고조선이니, 기자조선이니, 신라와 고려를 넘나들며 숱한 재상을 배출하였다느니, 00 0씨를 비롯하여 심지어 고려의 왕가도 자신들에게서 파생되었다느니, 마치 한국판 일본서기나, 임나일본부설을 듣고 있는 것 같아 거북스러울 정도였습니다.

이후, 이른바 0 0 동원설(00同源說)과 0씨, 0씨 분쟁을 알게 되었습니다. 정사인 고려사 열전 류공권(柳公權) 전에서 조상이 00이라는 표기를 두고, 0씨 측에서 휘(諱)가 아닌, 성씨로 오인한 데서, 그 근원이 있지 않았나 조심스럽게 사료됩니다. 그렇다면 이는 분명 곡해일 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와 비슷한 사례로 고려사 열전 이진(李瑱;경주 이씨로, 익재 이제현의 아버지) 전에서 그가 ‘삼한공신 금서(金書)의 후예다.’라고 명기하고 있는데, 이는 분명, ‘성은 이(李)요, 휘가 금서다.‘라는 의미이지, 결코 김씨(金氏)라는 의미는 아닐 것입니다. 또한, 장흥 위(魏)씨 측에서 신라 진성여왕의 부군인 위홍(魏弘)이라는 표기를 한 때 위씨로 곡해하기도 하였으나, 실은 경문왕의 동생이며, 진성여왕의 숙부인 김위홍(金魏弘)을 이르는 것으로, 현재에는 더 이상 위씨로 인식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저의 역사관으로는 가장 기본적이라 할 수 있는 과거 인물들의 생존여부와 관직 역임에 관해서는 무엇보다 정사인 삼국사기, 고려사, 고려사절요, 조선왕조실록 등의 기록과 일치하였을 때만이 공신력을 확보할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따라서 정사에 전혀 기록되어 있지 않거나, 정사의 기록과 상충, 또는 당시 여러 정황 상 가능성이 없다면, 이는 더 이상의 반론을 불허한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저들이 주장하는 조상이나, 거창한 내력들은 어느 정사에도 기록되어 있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니, 논쟁 자체가 이미 의미 없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입니다. 이는 00 0씨 측에서 더욱 잘 아실 것이라 믿고, 다만, 저의 아쉬움은 00 0씨 영락보는 서문만이 현존하고 있다고 하나, 이후 가정보는 기존의 영락보의 구성과 내력을 나름대로 충실히 포함하고 있을 것으로 사료됩니다. 따라서 한국 씨족사에 있어 가히 독보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음은 물론, 00 0씨 후손들에게도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보물임에도 자신들의 기록보다 근거에도 없이 과장되고 날조된 타 가문의 내력에 동조함과 동시에 명문 00 0씨와는 비교조차 될 수 없는 가문의 동생 집안임을 자임하였다는 것은, 과거 조선 명종조, 윤원형(尹元衡)을 필두로 한 소윤파의 계략에 참수라는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신 좌의정 류관(柳灌)공의 예와 인조반정으로 일가의 멸족이라는 최악의 비극을 남기며 역사 속으로 사라진 광해군의 국구이신 문양부원군 류자신(柳自新)공 일가의 예처럼, 선조들이 죽음과 맞바꾸며 이룩한 명문 벌족의 위치를 스스로 허무는 과오가 아니었을까 합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명문 00 0씨가 아닌 관계로 더 이상의 표현은 결례가 될 것같아 삼가하겠습니다.

항간에 나도는 몇몇 가문들의 조상 부풀리기는 이미 위험수위를 넘어선지 오래입니다. 이는 선조들의 그릇된 가문의식에 비롯되었기에, 그 책임을 선조들에게만 있다고 여기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고등교육자들이 넘쳐나는 현재에도 일말의 고증과 검증은 외면한 채, 무한정 부풀려진 가문의 내력에 마냥 도취되어 불분명하거나, 근거에도 없는 내용들을 양산하며 더 한 층 조상 부풀리기에 여념이 없는 현재의 우리들의 책임이 더욱 막중하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저 또한 이에 대해 정사를 바탕으로 역사적 근거를 제시하면, “역사는 승자에 의해 쓰여졌다.”라는 답변만 되돌아 올 뿐입니다. ‘역사는 승자에 의해 쓰여졌다.’라는 표현은 참으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단지, 근거에도 없이 날조된 내용들을 합리화하거나, 변명으로 남발되어서는 안 될 표현일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공유해야 될 한국사가 몇몇 가문들의 비뚤어진 가문의식의 희생양이 되어 도처에서 도용되고 남용되어, 결과적으로 우리의 역사가 얼룩지는 것은 아닌지, 이미 가문 꾸미기에 이성마저 매몰된 이들과의 논쟁이 더 이상 무슨 의미가 있을 것인지, 저 자신도 현재 지나친 언쟁을 피하고자 침묵과 방관으로 일관하고 있기에 이러한 저의 행동이 혹여, 조상 부풀리기에 혈안이 된 이들에게 면죄부만을 선사하는 것이 아닌지 걱정스러울 뿐입니다. 때문에 역사의 진실을 규명하여 바로 잡고자 하는 명문00 0씨의 단호한 결단과 행동에 깊은 감동을 받아 이 글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미약하나마 응원의 박수를 보냅니다.

마지막으로 주제 넘는 의견임을 전제로 한 말씀 드리자면, 그동안 진행되었던 0, 0 분쟁에 있어 서로 간의 논쟁과 전개과정 등을 부끄럽다 여기지 마시고, 여타 가문에게는 모범적인 사례도 될 수 있으며 후일, 00 0씨 후손들에게는 현재의 역사일 수도 있기에 정리, 자료화하여 보존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나 생각됩니다.

저의 볼품없는 글이 지나치게 길어져서 죄송합니다. 순수한 저의 의견이니 귀담아 들으실 것은 없습니다. 과거에도 그러했듯, 명문 00 0씨의 번영은 앞으로도 계속되리라 믿습니다. (요 근래, 제 주위의 00 0씨 분들이 멋있게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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