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채 정리가 되지 않았지만 기다리신 분들이 계시기에 짧게 소식을 전합니다.
이하 대승공 묘소를 류릉이라 부르겠습니다.
10월 5일 오후 3시에 대종회 사무실(대전)에서 20여분이 모인 자리에서 재일교포이시며
정숙공파 36세이신 류기환 어른(나이 70세)의 발표가 있었습니다.
9월 26일에 다녀오셨고, 평양에 있는 조 교수(성함?)란 분이 동행하면서 도움을
주었다 합니다. 류릉 밑의 동네에서 살고 있다는 류서열이라는 분을 현지에서
만났답니다.
이하는 류릉의 상황만 말씀드립니다. 류릉에 방문하기 전에 북한 측에 아무런 손을
대지 말고 지금까지 있던 그대로 보여 달라 했으나 현지에 가보니 (사진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봉분 앞의 땅을 돋우고 잔디도 입히는 등의 손을 대어 놓았답니다.
20080926_122154_01a.jpg : 2008년
2-03.jpg : 1943년
20080926_122134_01a.jpg : 구월산 자락이 보임.
북한에 가기 전에 도굴의 흔적이 있다는 얘기가 들렸는데 이렇게 정리해 놓아서
확인은 할 수 없었던 듯합니다. 류릉의 봉분 바로 앞에 비석이 있고, 봉분을
바라보고 왼편에 또 하나의 비석이 서 있습니다. 이것은 옛날 사진과 동일합니다.
그러나 왼편의 비석의 지붕(정확한 명칭?)이 사라져 있고 비석의 하부에도
돌이 있었는데 그 돌은 없어지고 비석의 바닥을 시멘트로 고정시켜 놓아서
넘어져 있던 것을 바삐 세워놓은 것 같이 보이기도 합니다.
또 옛날 사진을 보면 무덤 앞쪽에 최소 4단의 돌계단이 좌우로 길게 나 있고
그 양 끝에 석축이 각각 서 있는데 현재 그런 것은 보이지 않습니다. 돌들을 다
빼가서 썼는지 모르겠습니다.
주위의 무덤들이나 풍광과 비교하면 많이 훼손되어 있던 곳을 급조해서 복원시켜
놓은 것이라는 느낌을 갖게 합니다.
또한 옛날 사진에는 무덤 주위가 큰 나무들로 울창한데 현재는 전혀 그런 모습이
아니고 작은 나무들이 있는 야산 같은 형상입니다.
산 아래에서 류릉까지 3-40분 걸어가는데 그다지 힘들지 않은 높이에 있다
합니다. 또 중간에 예전에는 큰 은행나무가 서 있었는데 2002년에 벼락을
맞아 탔다고 합니다. 타다 남은 모습도 웅장하게 서 있습니다. 그 앞에
대승공 비석이 두 개가 있는데 그 중 하나는 큼직한 신도비입니다.
확인을 자세히 해봐야겠지만(그리고 사진이나 동영상으로는 판독이 어려워서
불가능할 수도 있지만) 비석들은 다른 사람들의 내용으로 덧씌워진 면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앞면은 대승공의 내용이 확실한데 옆면은 다른
사람의 기록이 새겨 있는 것을 말합니다.
류기환 님께서 대종회에 제공해주신 자료는 다음과 같습니다.
- 조 교수가 마련해 준 자료: 무덤 왼편의 비문(해석, 주석 첨부), 증보문헌비교의
문화류씨 자료의 정리(주해 첨부), 신증동국여지승람의 문화류씨 자료의 정리
(주석 첨부), 총련 잡지인 “조국”에 1997년 10월호에 실렸다는 조희승 박사의
“조선성씨유래34: 류씨에 대하여”라는 글, 그리고 신증동국여지승람의 원문,
전고대방(典故大方)이라는 책의 류씨 관련 원문(1페이지), 증보문헌비고의 원문,
그리고 마지막으로 월정사의 팸플릿으로 구성.
- DVD 4장: 100여장의 사진(중복해서 찍힌 것도 많음), 동영상 24개 파일.
동영상에는 차로 이동하는 모습, 작은 식당에서 열리는 환영행사(?) 모습,
류릉을 향해 산을 오르는 모습, 류릉에서 제사하는 모습, 내려오는 모습 등이
들어 있음.
저로서는 만감이 교차하는 자리였습니다. 1943년에 어떤 분(확인 요)이 사진을
8장 찍어 오신 후로 처음 구체적인 모습으로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낸 류릉이기
때문입니다. 상당히 훼손이 되었고 그것이 이번 방문 대비로 급히 복원된 정황,
사이사이에 느껴지는 북한의 딱한 현실 등이 마음을 무겁게 했지만, 여전히
류릉이 구월산의 심장에서 생명을 잇고 있음을 느끼는 감회는 컸습니다.
다음에 더 자세한 말씀을 드리고, 사진을 더 발췌해서 보여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사진과 동영상들을 면밀히 검토해서 류릉의 정확한 위치를 찾아내고,
지금 알려진 비문들과 가능한 한 비교를 해 보고, 류릉에 대한 좀 더 정확한
정보를 정리하려 합니다.
참석하셨던 많은 종원들께서 가문의 역사에 남을 중대한 일이라고 말씀하실
정도의 일이었습니다. 영락보의 소식이나 재실에 관한 정보는 이번에 알아낼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류기환 님께서 추후 북한 방문 계획을 갖고 계신다는
말씀을 듣고 여러 분께서 이들 사항을 꼭 알아봐 주시기를 신신당부 드렸습니다.
이번 북한 방문은 현재의 남북 상황에서 참으로 드문 일이었고, 그만큼 어려운
일이었다고 짐작이 됩니다. 그런 대장정을 우리 집안을 향한 일념으로 해내신
류기환 님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2008. 10. 5.
彩霞 류주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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