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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가계보 2 - 윤씨성의 연원

ryu하곡 2013. 6. 13. 10:23

 

 

1. 윤씨성(尹氏姓)의 연원(淵源)

 

고대 제왕기에 의하면 윤씨 성의 연원은 중국 천수(天水)에서 시작 되었다고 하였는데 천수는

지금의 감숙성(甘肅省) 위천도현(渭川道縣)을 말한다.

즉 상고시대에 소호금천씨(少昊金天氏) 현효(玄囂)가 자기의 차비 소생 아들(次妃所生子) 반(般)을

옹주윤성(雍州尹城-尹城은 지금의 군수)에 봉하여 제사와 방비(祀弧-사호)를 책임케하였다.

이로써 그 후손들을 윤성의 윤자(尹字)를 따서 성으로 사용함으로 윤씨 성이 창성(創姓)되었다는 것이다.

그 후로 요순시대(堯舜時代)에 윤수(尹壽)라 하는 명인은 내사관작(內史官爵)으로 대순(大舜)의

스승이었으며 은(殷)나라 탕왕시대(湯王時代)에는 윤희(尹喜), 윤해(尹偕)등의 명인이 있었는데

그중 특히 윤희(尹喜)라는 분은 출생할 때에 그 모친의 발자국(足跡-족적)에서 육지(陸地)에

연꽃이 피어난(生蓮) 일이 있었다 함으로써 윤씨가(尹氏家)에서 아들을 낳으면

생련지경(生蓮之慶)이라 하게 되었다고 한다.

또 주(周)나라 선왕(宣王)시에는 윤길보(尹吉甫)라는 명인(名人)과 주 정왕(周貞王)시에도

윤탁(尹鐸)이라는 명관(名官)도 있었다고 전한다.

또 만성통보(萬姓統譜)에는 요(堯)임금의 후손(后孫)이 범(范), 윤(尹), 당(唐), 위(韋), 유(劉)등

5성으로 분파되었다는 기록이 있으며, 금영천백련기(金榮川百鍊紀)에는 이윤(伊尹)의 자손이

이(伊), 신(莘), 윤(尹), 형(衡)등 4성으로 분파되었다고 하나 윤씨만이 가장 뚜렷한 존재로 사기(史記)에 남아있다.

우리나라의 윤씨 성을 살펴보면 주(周)나라 무왕시대(武王時代)에 기자(箕子)가 동으로

이동(東國移來-동국이래)할 때 무리 중에 윤씨 몇 분이 수반(隨伴)하여 고조선(古朝鮮)에

들어와 살게 됨으로써 우리나라 윤씨성(東國尹姓-동국윤성)의 연원(淵源)이 되었다.(箕子誌參照-기자지참조)

우리의 성자(姓字)는 시조이신 태사공(太師公)을 하늘에서 얻어 보육(天授保育-천수보육)하고

자기 성씨인 윤(尹)를 주어 창성(隨尹創姓-수윤창성)케 하였다는 노파 윤온(尹媼)의 성자(姓字)가

다시 우리 성(姓)의 연원이 되었다.

이규보(李奎報)가 쓴 국자사업 윤공 애사(國子司業尹公哀詞)에 “여기에 기위박대(奇偉博大)한

참된 분이 있으니 그가 바로 천수 윤공(天水尹公)이시다.” 라고 했으니 고려시대에 우리 윤씨의

근원이 천수(天水)임이 널리 알려진 사실임을 알 수 있다.

다만 태사공(太師公)이전 선대에 대한 기록이 없으므로 자연 태사공(太師公)을 시조(始祖)로 모시게 된 것이다.

 

 

출처 : 남원윤씨대종회
글쓴이 : 윤태상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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