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류씨

[스크랩] 조선시대 14-16세기에는 부계.모계 동등했다는 연구물.

ryu하곡 2011. 2. 14. 20:41

조선시대 14-16세기에는 부계와 모계를 차별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대 국사학과 이종서(李鍾書. 36) 박사가 14-16세기 각종 문헌
과 고문서에나타난 조선시대 친족용어를 분석한 연구결과 부계-
모계를 차별하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이씨는 이같은 연구성과를 최근 서울대 국사학과 박사학위 심사
통과 논문으로제출한데 이어 그 중 일부를 최근 발간된 계간 역사
학 잡지 「역사비평」 63호에 「14세기 이후 친족용어의 변천과
친족관계」라는 논문으로 발표했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여자형제를 각기 구별해 부르는 '고모'와 '이
모' 호칭의 예를 보면 '숙모'(叔母)라고만 호칭하는 것으로 나타
났다. 이러한 경향은 한자어만이아니라 순한국어에서도 마찬가지
였다.

'고모'와 '이모'의 반대편에 위치한다고 할 수 있는 '숙부'와 '외숙
부'의 경우도 역시'숙부'(叔父)로 통일돼 있었다.

이는 '나'(我)를 기준으로 한 아랫세대에도 마찬가지로 나타났
다. 현재 한국사회에서 조카는 생(甥)과 질(姪)로 구분되지만 이
당시에는 한가지 용어로 지칭되고있었다.

이에 대해 이씨는 "부계와 비부계를 차별하지 않은 친족의식을 반
영하는 것으로판단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이러한 친족 관념은 재산 분배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다시 말
해, 친족 개념에서 부계와 모계를 차별하지 않았으므로 재산 분배
에서 아들 딸을 구별할 리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혈족 관념이 구체적으로 언제부터 분기가 일
어남으로써 모계에 대한 차별이 시작됐을까?

이씨에 따르면 적어도 친족용어에서는 양반 사족층의 경우 16세
기 후반에 이미분화조짐이 보이기 시작하다가 17세기 중반이면
현재와 비슷한 남성 부계 중심사회로 변동돼 갔다는 것이다.

조선왕조가 임진왜란-병자호란의 양란을 겪고 난 직후인 17세기
중반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한국사의 획기로 생각되고 있다. 정치
사상사적으로는 중국 일변도 소위사대사상에서 벗어나 조선이 세
계의 중심이라는 소중화주의가 강렬하게 대두되는 한편, 문중(門
中)과 종중(宗中)이 등장했고, 족보 편찬이 바야흐로 붐을 이루
기 시작했다. 사회인류학적 측면에서는 부계 중심주의가 관철되
면서 모계는 친족 관념에서현저하게 축출되기 시작했다.

1970년대에 최재석 당시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17세기 중반 이
전에는 재산 분배에 있어 아들 딸을 차별하지 않았다는 한국 사회
인류학사상 기념비적 논문을 발표한 바 있다.

이번 이종서씨 논문은 이같은 최 교수 이래 정설로 굳어지다시피
하고 있는 주장을 '친족용어'라는 새로운 소재를 통해 실증적으
로 뒷받침하고 있어 주목을 끌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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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廣州 安 씨
글쓴이 : 안택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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