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재균

호와 자

ryu하곡 2011. 1. 31. 12:17

1. 號는 이름이나 자(字)외에 편하게 부를 수 있는 이름으로 본 이름을 부르는 것을 피하는 풍속에 그 근원을 두고 있으며, 본 이름보다는 호나 자를 사용하는 것이 예의를 차리는 것으로 인식되었기 때문이었다.

호는 대부분이 거처하는 곳이나 자신이 지향하는 뜻, 좋아하는 물건을 대상으로 한 경우가 많았다. 따라서 거처하는 곳이 바뀜에 따라 호가 달리 사용되기도 했으며, 좋아하는 물건이 여럿인 경우 호는 늘어나게 마련이었다. 호는 집안에서 사용한다는 의미의 당호(堂號)와 시 ·서 ·화 등에 쓰는 아호(雅號)로 나누어지기도 했으나, 양자간에는 뚜렷한 구별이 없이 혼용되었다. 주로 자신이 학문을 배우고 가르친 곳을 호로 하는 경우가 많았다.

 오늘날에는 사회체제가 다원화되면서 2종 이상을 쓰는 호보다는 자신의 실명(實名)을 사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문학 ·예술 등 일부 분야에서 호의 전통을 이어나가고 있다. 호를 통하여 당시 인물들의 세계관과 인생관의 일면을 엿볼 수 있다.

2. 자(字)-본명이 태어났을 때 부모에 의해 붙여지는 데 비해 자는 윗사람이 본인의 기호나 덕을 고려하여 붙이게 되며 자가 생기면 본명은 별로 사용하지 않는다. 그래서 본명을 휘명(諱名)이라고도 한다. 흔히 윗사람에 대해서는 자신을 본명으로 말하지만 동년배 이하의 사람에게는 자를 쓴다.

3. 호를 통하여 당시 인물들의 세계관과 인생관의 일면을 엿볼 수 있다(출처 : 네이버 백과사전) 그렇다면 호자 없이 살다가 돌아가신 부, 조부, 증조 고조의 묘소에 묘비를 세우면서 자손들이 선조의 호를 지어(作號) 호를 사용하는 것이 선조의 인생관을 알 수 있어 타당한지 생각해 본다. 옛날 비문 文化柳公 學生 諱 ○○ 之墓에서 호를 지어 文化柳氏 ◎◎公 諱 ○○ 之墓(호는 ◎◎, 이름은 ○○로 표기)로 비문을 바꾸는데 과연 예절에 맞는지? 더 연구해 볼 문제이다.

4. 집안 여러 선조의 시제를 지낼 때 축문을 보면 『……顯 八代祖考 學生 府君, 顯 七代祖妣 孺人 晋州 鄭氏 之墓 氣序流易……』『……顯 七代祖考 學生 府君, 顯 七代祖妣 孺人  光州 鄭氏 之墓 氣序流易……』등으로 축관이 아닌 다른 자손이 볼 때 부인이 없다면 몇 대조 학생 부군은 별 의미가 없고 가슴으로 느껴지지 않아 호를 붙여 관직이 없으면『몇 대조 ◎◎公 부군』 더 구별이 뚜렷하지 않을까 생각한다.(◎◎은 호) 관직이 있으면 『몇 대조 事務官 ◎◎公 부군』의 표기는 양천허씨 시조대제 축문을 참조하였다(http://www.heo.or.kr/chuckmun/chuck-chukmun.htm). 관직이 없어 선조의 축문 『몇 대조 학생 ◎◎公 부군』보다는 『몇 대조 ◎◎公 부군』이 어떨까?

5. 류재균의 호에 대한 작호 사례


夏谷 作號


                 鳥山  李栽洙

岡上亭姿淸雅然(강산정자청아연) - 이 세상 높은 곳에 亭岡은 청아하네

夏谷情景依舊仙(하곡정경의구선) - 그 밑 골짜기 정경은 옛대로 선경이로다

林間黃鳥歌美聲(임간황조가미성) - 숲속 꾀꼬리는 아름다운 노래 부르는구나

追遠上指白雲天(추원상지백운천) - 祖上의 學德이 그리워 하늘에는 흰구름 떠 있네.

                                                    



※ 亭岡-夏亭公을 말함, 夏亭의 덕이 산과 언덕처럼 장구하기를 축원하는 말.

※ 淸雅-속된 티가 없이 맑고 아름답다. 청백리像.

※ 夏谷-하정공의 자손 在均을 말함.

※ 情景依舊仙-夏谷의 인격이 옛선조 그대로 淸廉한 모습.


                                   1996. 1. 20

                                    鳥山  李栽洙(湖南譜學會長, 農學博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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