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양 창평 삼지천 마을에서 행복을 말하다
느리게 걸을수록 많은 것이 보인다는 담양 창평 삼지천 마을. 5백년은 족히 된 돌담길과 고즈넉한 고택, 깊은
장맛을 내기 위해 정성을 다하는 명인. 진심으로 손님을 맞이하는 한옥민박집 등 삼지천 마을에는 내딛는 걸음걸음마다 현재를 뛰어넘는 과거와 미래가 있다.
삼지천 마을의 돌담길을 걷다보니...
따뜻한 봄 햇살이 삭막했던 마음을 녹일 무렵, 바쁜 생활로 지친 심신을 달래고자 평화로운 시골마을 어딘가를 찾던 중 삼지천 마을을 알게 됐다. 느리게 걸을 수 있는 여유를 준다는 정보만으로도 가슴이 벅찬 것은 그만큼 빠르게 돌아가는 도시 생활에 염증을 느끼고 있어서였을 것이다. 삼지천 마을은 16세기 초에 형성된 전통 한옥마을이다. 유명한 돌담길이 마을 전체로 굽이굽이 이어져 있고 그 사이로 보이는 전통 가옥의 모습은 옛 정취를 느끼게 한다. 그래서인지 마을에 들어서자마자 저절로 걸음이 느려지는게 느껴졌다. 슬로시티로 지정된 마을임은 알고 있었지만 과연 슬로시키가 어떤 매력을 주는지 의문이 가득하던 차였는데, 종종걸음이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이곳 공기가 입구에서부터 그 매력을 내뿜고 있었다.
여기서 잠시 슬로시티에 대해 짚고 넘어가자. 슬로시티는 이탈리아 중북부의 작은 마을 그레베 인 키안티의 슬로시티 운동에서 시작됐다. 'slow'는 단순히 'fast'의 반대가 아니라 환경, 자연, 시간, 계절은 물론 우리 자신을 존중하며 느긋하게 사는 것을 의미한다. 슬로시티의 슬로건은 한가롭게 거닐기, 듣기, 권태롭기, 꿈꾸기, 기다리기, 마음의 고향 찾기 등 여유로운 아날로그적 삶 추구다. 2007년 12월 1일 아시아에서는 최초로 우리나라 전남지역 네곳이 선정되었는데 전남 완도군의 청산도, 신안군의 증도, 장흥군의 장평, 그리고 바로 이곳 담양군의 '삼지천 마을'이다.
결국 슬로시티란 바쁜 현대인에게 마음의 안정과 여유를 줄 수 있는 곳을 말하는데 삼지천 마을은 그에 걸맞게 무척 평화로웠다. 마을에 들어섰을 때 가장 마음에 든 점은 시끌벅적하고 상업화에 물든 관광지의 아우라가 아닌 지나가다 숨을 고를 수 있는 쉼터의 느낌을 준다는 것이었다. 마을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여느 시골 마을과 다르지 않았으며, 순박하고 인심 좋은 주민들에게서는 유명한 마을의 거만한 주인의식 같은 것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마을이 시작되는 입구이자 가장 큰 건물인 면사무소에서 무료로 대여해주는(공짜에 익숙하지 않은 도시사람들에게는 이것 또한 작은 감동이다) 자전거를 끌고 이 동네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돌담길을 찾았다. 마을은 모두 돌담길로 형성되어 있지만 유독 이 돌담길이 유명한 이유는 우리나라에서 잘 볼 수 없는 2층 한옥집이 보이기 때문이다. 일본식 한옥을 연상시키기도 하는 이 한옥 앞에 서니 저절로 카메라 셔터에 손이 갔다. 마을에는 전통방식 그대로 유진된 돌담길과 함께 정갈하게 보수된 돌담길도 있었다. 전통을 지켜나가는 곳에 인위적인 손길이 더해진다는게 왠지 거슬려 이유를 물으니 머물다 가는 사람들에게 좀 더 가다듬어진 돌담길의 정취를 느끼게 해주기 위해서 만들었단다. 슬로시티에는 여유와 아날로그적인 감성도 있지만 천천히 자연스럽게 나아가는 미래적인 요소도 존재해야 한다는 게 그 이유.
돌담길을 걷다 보니 고가들이 눈에 띄기 사작했다. 이곳은 고 씨 집성촌으로 고재선, 고정주, 고광표, 고재욱 고가가 유명하다. 그 중 가장 유명한 고재선 고가를 찾았다.
뒷문으로 들어서자마자 넓은 마당이 있는 안채가 펼쳐지고 아무도 살지 않는 이 고가의 대청마루에는 봄기운이 완연한 햇살이 사람의 온기를 대신하고 있었다. 하루 전 때 아닌 눈이 내려 삭막한 분위기의 고가를 사진에 담아야 하는 건 아닌가 하는 걱정이 앞섰는데 하늘이 도왔는지 이날은 살랑살랑 부는 봄바람과 청명한 하늘이 이곳을 찾은 이들의 발걸음을 가볍게 해주고 있었다. 이 빈집에 무에 그리 볼 것이 많을까 했지만 집 안 곳곳을 살피다 보니 시간이 훌쩍 흐르면서 우리 조상들의 여유로운 한때가 머릿속에 그려지기도 했다.
고가의 매력에 흠뻑 취해 있을 무렵 이곳에서 조금 떨어진 고 씨 집안 종부 명인 기순도씨의 장맛에 대한 얘기를 들었고 그곳으로 발걸음을 옮기지 않을 수 없었다.
마을을 돌아나가다 보니 허름한 쌀엿 간판이 두세 집 건너 한 집씩 붙어 있었다. 창평 쌀엿은 조선시대에 양녕대군이 이곳 창평지역에 낙향해서 지낼 때 동행한 궁녀들이 전수해준 것으로 이 지역에 부임한 현감들이 궁중 대감들이게 선물한 것으로 유명하다고 한다. 창평 쌀엿은 바삭바삭해서 입 안에 붙지 않고 먹은 뒤에도 찌꺼기가 남지 않으며 생강을 섞어 맛을 내는데, 이 쌀엿을 원료로 만든 한과 또한 유명하다.
때마침 지나가던 동네 주민이 한과 한번 맛보라며 한 봉지를 덥석 안겨주었다. "감사합니다"를 연신 외치고 한 입 베어무니 과연 그 맛이 일품이었다. 겨울에 오면 엿을 고는 모습을 볼 수 있다는데 그 유명한 보성댁 간판 앞에 서니 엿 고는 모습을 놓친 것이 조금 아쉬웠다. 돌담 중간중간 아직 피지 않은 담쟁이 넝쿨이 목적지를 향하는 발걸음을 또 한번 조금씩 늦춰주었다.
진장의 깊은 맛을 이어가는 명인에게 인생을 배우고
마을 입구를 조금 벗어나 대나무 숲을 지나 기순도 명인의 집에 당도했다. 들어서자마자 마당을 가득 채운 4백여 개의 장독이 "과연 명인의 집이구나!"탄성을 자아내게 했다.
온화한 미소로 일행을 반긴 기순도씨는 둘러보기 전에 장맛을 보라며 일행의 점심상을 마련한 곳으로 우리를 이끌었다. "차린 것 없는 시골밥상"이라는 기순도씨의 말이 무색하게 청국장, 된장, 간장과 어우러진 깔끔한 나물 반찬들로 이루어진 보약을 능가하는 귀한 밥상이었다. 감탄사를 연발하며 한 상 해치우고 난 후 본격적으로 장맛의 비밀을 캐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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