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류씨

강신 참신 첨소봉영

ryu하곡 2024. 12. 15. 15:40

조선조부터 산신재와 제사, 참신과 강신에서 어느 예를 먼저 행하느냐?에 대한 논란으로 각 집안마다 다르기에 본문이 옳다는 내용은 아니며 저의 집안 사례를 중심으로 고찰하니 오해 없기를 바랍니다.

 

첨소봉영

축문과 홀기에서 선조들의 가례를 부정하고 새로운 가례를 주장하는 경우가 있어 하정공 시제의 축문과 홀기를 근거로 고양공 이하 가례 검증했음.

1. 첨소봉영(瞻掃封瑩) : (글자풀이) 묘역을 쓸고 봉분을 바라보니

재각에서 제사 지내면서 묘가 안보이는데 첨소봉영(瞻掃封瑩)를 쓰는 것이 잘 못이라는 주장에 대하여

하정공파보3권 부록 2페이지 축문

24111(101) 서애 묘제(우천으로 상로재 제사) 축문

풍산류문 축문 참고할 점

효현손(孝玄孫) 류창해는 서애 15대손으로 장손자인데 玄孫은 고손자인데 玄孫이라 쓴 점.

배울 점

재각(霜露齋)에서 제사지 내면서 첨소봉영(瞻掃封瑩,깨끗하게 청소한 산소를 바라보니)를 쓰는 것이 잘 못이라는 주장

갑자기 재각으로 장소를 옮겨 적치우천자행망제(適値雨天玆行望祭,비가 와서 묘를 바라보며 제사를 지냄)쓴 점

재각에서 제사를 지내는 경우 미리 산소에 가서 절하고 청소하고 재각으로 오기에 첨소봉영을 꼭 써야 함( 첨소지각瞻掃之閣, 첨소지재瞻掃之齋 등을 쓰면 안됨)

참신례(叅神禮) 參神禮×(참 글자는 글자가 아님)

1. 묘제에서 참신례를 먼저한다는 주장에 대하여

하정공파보3권 부록2페이지 홀기 : 유관자는 예복을 입고 무관자 흰옷입은자, 검은관쓴자 모두 묘소에서 재배하고(참신례가 아님)

하정공 홀기의 현관소복흑대(玄冠素服黑帶) : 검은 모자, 흰옷, 검은 허리띠

孔子羔裘玄冠, 不以弔(공자고구현관 불이조)

공자는(孔子) 새끼양가죽으로 만든 옷을 입고(羔裘) 검은 관을 쓰고는(玄冠), 조문하지 않았다(不以弔).

* 羔裘(고구): 대부(大夫)의 예복(禮服)의 하나. 새끼양의 가죽으로 만듦.

[集說] 陳氏曰喪主素, 吉主玄, 弔必變服, 所以哀死.

[集說] 진씨가 말하길(陳氏曰) 상주는 흰색을 입고(喪主素), 길주는 검은색을 입으니(吉主玄), 조문할 때는() 반드시() 옷을 바꾼 것은(變服), 죽음을 슬퍼하려는 것이다(所以哀死).

하정공 홀기의 유초극즉용도부서참삼이쇄소(有草棘卽用刀斧鋤斬芟夷灑掃) : “풀 가시나무를 칼 도끼 호미를 사용하여 자르고 베고 깨끗히 청소하고 쓸고장막帳幕(현재는 천막天幕, 서양식텐트)을 세우고 ~~~~

2. 1960~70년대 장례식

돌아가시면 임시위패(지방)으로 문상객을 받고 임시위패를 모시고 산소를 만들고 시신을 묻고(혼백魂魄으로 돌아가시라고) 지방은 모시고 다시 집으로 와서 상식(上食)과 초하루 보름은 전()3~1년간 올린후 대상(大祥)이 끝나면

사당이 있는 경우 신주(위패)를 조상신주 곁에 모시는 부제(祔祭)를 지낸다(위패를 모실 때는 참신을 먼저한다)

신주(위패)가 없으면 임시위패(지방)로 제사를 지낼 때 강신을 먼저하고 참신을 한다.

3. 묘제(墓祭)

한국민족대백과사전 자료

예서(禮書)에는 묘제라고 하나 일상생활에서는 시사(時祀시향제(時享祭)라고도 한다. 주자의 가례(家禮)에 의하면, 4대 조상까지는 3월 상순에 날짜를 택하여 묘제를 지내고, 그 윗대의 조상은 101일에 올리도록 되어 있다.

한편, 이재(李縡)사례편람(四禮便覽)에 의하면, 이 묘제는 오래된 것이 아니라 주희가 한번 묘제를 지냈을 때 그것이 예가 아니라는 비판이 오고갔음에도 불구하고 지내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 나라에서는 예로부터 정초·한식·단오·추석에 묘제를 지내왔음을 지적하고 있다.

하정공 세향홀기에 의하면

묘역에 도착하여 절을 하고 진설하고, 하늘에 계신 혼을 불러오기위해 향을 피우고, 지하에 있는 백을 불러오기 위해 모사에 술을 따르고는 강신례를 하여 조상의 혼백이 오시면 참신을 한다.

하정공홀기의 현대적으로 해설 : 상복, 굴건(屈巾,두건)을 마포로 만들기에 소복이나 유건(유생들 실내 검은 모자)은 절을 할 수 없었는데 일제시대 검은 상복 검은두건으로 바꾸어지고 1969가정의례준칙에 관한 법률시행령과 서양복의 영향으로 검정색 양복과 검정색 넥타이에 베로 만든 건()오로 바꾸어져 모든자손은 산소에 오면 절하라로 됨. 그후 강신례 참신례 순서로 진행됨.

4. 유건(儒巾)

유건을 넓은 의미로 생원·학생·사인(士人) 등 유생이 착용하던 관건(冠巾)으로 볼 때에는 복건도 이에 포함된다.

재료는 검은색 모시로 만들었다. 성균관 안이나 집안에서만 썼고, 거리에서는 쓰지 않았으나 현재는 제사에 사용하는 두건 모자로 됨.

하정공 홀기에 의하면 재각에서 제사를 모셔도 제사 전에 묘소를 청소하여 첨소봉영을 축문에 쓰기에 제사 전에 묘소를 보고 제사에 참석하기 바람.

5. 先降神 後叅神, 先叅神 後降神 說의 근거

先 降神 後 叅神

주자가례의 初祖 先祖祭 墓祭와 사례편람(이재李縡 1680-1746가 지음)墓祭, 격몽요결(율곡전서栗谷全書) 祭儀鈔墓祭 등이 先 降神 後 叅神으로 되어 있으나 그 이유에 대한 기록은 없다.

先 叅神 後 降神

주자가례 및 사례편람 격몽요결 祭儀鈔 등 여러 禮書들에 四時祭 忌祭(탈상후 매년돌아가신날 지내는 제사) 墓祭 등에서 한결같이 先 叅神 後 降神으로 考證하고 있으나 그 이유는 설명이 없다.

先 叅神 後 降神 說論理的 矛盾

먼저 叅神을 하였으면 이미 조상께서 神位降臨한 것으로 간주하고 拜禮를 올렸으므로 다시 降神儀式이 불필요할 것이다.

인사를 드린 후 다시 조상을 모시는 降神의 거행은 先後가 전도된 行禮로 보여 진다.

沙溪선생이 주자가례에 틀린 곳이 12군데가 있다는 것은 이치에 안 맞는 것이 아니라 앞뒤가 안 맞는다.”는 것이다.

先 降神 後 叅神 說合理性

降神焚香酹酒의 절차이다. 분향은 하늘에 계실지도 모르는 조상을 모시는 의식이고, 酹酒는 땅에 계실지도 모르는 조상을 모시는 의식이다. 을 모시는 의식이라고 한다.

먼저 조상을 모신 후에 자손들이 인사를 드리는 것이 논리적으로 맞을 것이다. (오시지도 않은 조상께 참신 후, 강신을 한다면 다시 참신의 절차가 있어야 한다)

或者神主를 모시는 제사는 선참 후강이고 紙榜(신주가 없는)을 모시는 제사는 선강 후참이라 한다. 그러나 신주든 지방이든 조상께서 神位에 강림하신 후 인사를 드리고 제사를 모시는 것이 이치이다.

神主자체가 조상이므로 선참 후강이라고도 한다. 그렇다면 이미 조상을 뵙고 나서 다시 강신을 청하는 것은 논리적으로도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6. 叅神이란 무엇인가.

祭祀에 참석한 이들이 죽은 祖上이나 을 맞고 드리는 인사의 예임.(鏡湖曰叅神者叅謁之禮也)

7. 四時祭神主忌祭 등에서 先叅後降으로 행하는 까닭

이란 시각적으로 볼 수도 없고 감각적으로 느낄 수가 없으니, 神主에 안주하여 있는지 아니면, 잠깐 비우고 볼일을 보러 나갔는지, 그 상태를 분명히 확인할 방법이 없으니, 祠堂에서 焚香하여 神主에 안주시켜 거두어 받들고 나와 사당의 交椅에 안치하였으니, 먼저 叅神을 하게 되는 것이며 이어 降神을 하는 연유는 魂氣와 지하의 을 찾아 魂魄을 일체화시키기 위한 예임.

8. 祠堂紙榜, 산신제를 비롯한 神祭에서 先降後叅으로 행하는 까닭

祠堂이나 紙榜, 神祭 등의 祭祀는 사당제에서 神主와 같이 이미 祠堂에서 행한 焚香 求神가 없었고, 紙榜을 붙인 交椅에는 祖上이 없는 虛位이며, 산신제 등 神祭는 그 대상인 은 본래가 가 없이 만 존재 對象體를 관장하는 으로서 가 없는 고로 先降로서 을 먼저 불러 앉힌 뒤 叅神을 하게 되는 것임.(沙溪曰凡神主不出仍在故處勅善降後叅如朔望參之類是也要訣若時祭行于祠堂則無奉主就位節次餘如上儀先降神而後叅神)

神主란 무엇인가.

神主란 그 祖上 神表象.(五經異義主者神象也孝子旣葬心無所依以虞而立主以事之)

란 무엇인가.

葬後 山神祭 祝文窆玆幽宅이라 하였으니 亡者의 집이며, 周禮(현 홀기) 春官(현 헌관) 小宗伯(현 집례)葬禮를 마치면 祭祀를 지내는 라 하였으니 神主와 더불어 祭祀를 지낼 수 있는 亡者가 묻힌 .(周禮春官小宗伯成葬而祭墓爲位註成葬丘已封也位壇位也先祖形體托於此地祀其神以安之沙溪曰旣葬先之墓爲體魄也)

9. 사람이 죽으면 祭祀 지낼 수 있는 곳이 두 곳 뿐인데 虛體神主實體墓所뿐임.

祠堂 神主祭에서 降神을 먼저 행하는 까닭은 神主虛體이니 焚香으로 神主에 합치시킴으로써 비로소 神主가 그 祖上으로 완성 후속 를 이어 행하는 것임. 특히 神主는 그 자체가 虛體로서 간단한 는 행함에도 반드시 降神를 행함. 祠堂 出入必告禮法 중 잠깐 문밖을 다녀 올 일로 祠堂할 때 瞻禮로 행하는 이외에 매일 晨謁 및 하루 이상 걸릴 출입 시 모두 焚香하여 降神 再拜하고 그 사유를 고하는 까닭은 神主虛體인 연유에서 임.[祠堂主人晨謁於大門之內條()主人謂宗子主此堂之祭者晨謁深衣焚香再拜出入必告條()主人主婦近出則入大門瞻禮而行歸亦如之經宿而歸則焚香再拜遠出經旬以上則再拜焚香告(云云)又再拜而行歸亦如之但告(云云)經月而歸則開中門立於階下再拜升自阼階焚香()告畢再拜降復位再拜餘人亦然但不開中門]

墓所에는 정식 墓祭가 아닌 省墓 등 찾아뵙는 에서 降神 없이 再拜로서 인사의 를 마치는데 이는 實體인 까닭에서 임.[奔喪若旣葬則先之墓哭拜條()之墓者望墓哭至墓哭拜如在家之儀未成服者變服於墓墓祭灑掃條()主人深衣帥執事者詣墓所再拜奉行塋域內外環繞哀省三周其有草棘卽用刀斧鉏斬芟夷灑掃訖復位再拜尤菴曰省墓時初度再拜復再拜而退]

先降後叅에 대한 先儒들의 말씀도 계시니, 어느 예를 따른다 하여도 非禮라 할 수는 없으나 어느 禮法이든 行者는 그 를 따름에는 당위성과 까닭은 분명히 이해하고 따라야 할 것임.[要訣先降神後叅神沙溪曰設位而無主則先降後叅墓祭亦然家禮本文先叅後降未知其義要訣墓祭先降後叅恐爲得也備要墓祭欲依要訣先降後叅而改家禮本安故仍之耳鏡湖曰祭后土先降後叅而註曰同上則墓祭亦先降後叅據此可知此條之先叅後降恐是板本之訛]

10. 結論

栗谷論 이후 본 墓祭 禮法先降後叅으로 통일됨이 없이 많은 禮書에서 소위 家禮說先叅後降禮法을 따르고 있으나 현대는 하정공 홀기에 따라 祭儀에서 전통에 따라 지방으로 신주를 대신하므로 현대의 제사는先 降神, 後 叅神이 합리적이다.

墓祭에서 先叅後降이 옳다 한다면 栗谷선생께 하는 이 되고 그르다 하면 家禮를 부정하는 격이 된다.

하정공 세향 홀기에 의하면 참석한자 모두 (참신이 아닌) 할아버지 집에 들어 서면 幽宅()에 절하고(할아버지 집 방문 때 마당에서 인사하고 방에 들어가 할아버지를 방으로 모시고降神 정식으로 인사叅神한 것처럼) 의례에 의하여 강신하고 참신하도록 하고 있다.

묘가 보이지 않는 곳齋閣祠堂에서 의례를 행하여도 미리 묘역을 청소하였기에 첨소봉영瞻掃封瑩을 축문에 쓴다.

참고문헌 :

https://cafe.daum.net/YEsarang/8iHg/422?q=%E6%9C%89%E8%8D%89%E6%A3%98%E5%8D%BD%E7%94%A8%E5%88%80&re=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