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류씨

[스크랩] 행군수 조동훈 불망비

ryu하곡 2016. 3. 4. 13:09


行郡守趙公東勳永世不忘碑

(행군수조공동훈영세불망비)



                                                                                          



소재지 : 전남 여수시 군자동 472(진남관 내, 동문로 11)


여수시 군자동 여수 진남관 입구 비각 안에 있는 조선 말기 돌산군수 조동훈의 영세불망비이다.


여수가 한창 복군(復郡) 운동에 열을 올리고 있을 때 초대 돌산군수로 임명된 조동훈이 종포에 왔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지방 유지들은 조동훈에게 돌산을 돌산군에 편입시켜 여수에서부터 돌산까지 다스려 달라고 청원하였다.

이에 조동훈은 조정에 여수 네 개 면(面)을 돌산군에 편입시켜 줄 것을 건의하는 한편, 주민들을 위로하고 청사 등 허물어진 건물을 손질하는 등 돌산군수보다 오히려 여수군수 노릇에 충실하였다. 그러다가 다음해 3월에 친상(親喪)을 당해 떠나자 주민들이 그의 수레를 둘러싸고 눈물을 흘리며 아쉬워하였고, 비를 세워 그의 덕을 기렸다.


장방형의 돌로 만든 비좌 위에 세워진 철비로 높이는 130㎝이고, 너비는 32㎝, 두께 3cm 이다.

비의 전면에 行郡守趙公東勳永世不忘碑 新郡几務 爰啓聖廟 民曰龔黃 於古有光(행군수조동훈영세불망비 신군궤무 원계성묘 민왈공황 어고유광) 그리고, 뒷면에 戊戌三月日 監董前監察柳敏烈 有司鄭時洪(무술삼월일 감동전감찰류민열 유사정시홍)이라 새겨져 있다.


건립연대는 1898년(고종 광무 2년)이며, 비갓의 모양은 거북이 윤곽에 기왓골무늬이다.

비문의 각법은 사각형 홈 내부에 양각으로 되어 있다.


여수 진남관 비각 안에 있는 다른 철제 비석에 비하여 상태가 제일 양호하며 비문도 전부 판독이 가능하다.

초대 돌산군수로서 여수군의 설군(設郡)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조동훈과 당시 여수 지역민들의 정서를 알 수 있는 자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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