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비재(憤悱齋)
분해도 말하지 아니할 수 밖에 없으니 자신 되돌아 보기와 학문에 더욱 정진하라.는 뜻으로 1643년 송계 류공신선조가 설립--인조 21년 임란 정유재란으로 학문이 거의 파괴되던 1643년 사교당 준 선조와 함께 운영하여 자손을 훈육한 서당임
신익전(申翊全)[1605~1660]이 쓴 『동강 유집(東江遺集)』의 「분비재기」에, ‘불분 부계(不憤不啓) 불비 불발(不悱不發)’[마음 속으로 분발하지 않으면 열어주지 않고, 애태워하지 않으면 말해주지 않는다]의 뜻을 따라 ‘憤悱齋’라는 편액을 걸었다고 한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출처 : 문화류씨 - 뿌리 깊은 버드나무
글쓴이 : 夏谷류재균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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