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관순에 대하여 <!--[if !supportEmptyParas]--> <!--[endif]--> 검인증 교과서에 유관순열사가 빠졌다고 난리가 났다. 나의 결론을 먼저 말하자면, 유관순은 3.1운동에 참여해서 옥사한 독립운동가가 맞다. 그러나, 우리가 알고 있는 유관순의 모습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간략하게 몇 가지 사례만 언급하겠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우선, 유관순의 형량과 시체 토막설이다. 많은 사람들은 유관순은 옥중에 갇혀서도 일제에 항거하며 독립만세를 외치다가 더 많은 미움을 사서 아주 혹독한 고문을 당하고, 형량도 늘었다고 알고 있다. 게다가 너무 미워서 시체마저도 토막을 냈다는 것에 대해 분노를 하고 있다, 그러나, 남겨진 사료를 보면, 형사사건부엔 5년, 그 후에 항소해서 복심법원에선 3년으로 감형, 그 담엔 항소 포기, 그 후에 영친왕 결혼으로 1년 6개월로 다시 감형된 것은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이고, 당시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은 모두 혹독한 고문을 당했다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유관순만 유독 더 잔인하게 부관참시 되었다는 것은 근거가 없다. 당시 옥사를 하게 되면, 반드시 부검을 하게 되어 있어서 부검을 한 것이고, 시신 인도가 늦어져서 가맹장을 했던 시신을 받았기 때문에 시신의 상태가 많이 나빴다는 것은 현재 유관순 연구소와 천안시청에서도 밝히고 있는 점이다. 사실... 유관순의 직접적 사인에 대해선 어느 누구도 말 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피고 유관순, 유중무,김용이, 조인원, 조병호에 대한 형의 양정은 과중하여 타당치 않으매 동 피고 등의 공소는 각각 이유있고” - 3년으로 감형된 복심법원 판결문 中- 그리고, 유관순집안 얘기이다... 유관순의 부친 유중권에겐 계출, 우석, 관순, 인석, 관석의 5남매가 있었다. 사촌은 7명이나 되었다. 그런데 유관순에 대한 최초의 전기인 <순국처녀 유관순전>를 1948년 출간한 이는 전영택인데, 그 원전은 유관순과 아주 먼 친척뻘 되는 ‘유제한’이 쓴 동명의 글이다. 뭐.. 전기야 누가 쓰든 그게 무슨 상관이 있겠냐만은, 사실을 기록하지 않고, 다른 의도가 있을 때는 문제가 된다. 유제한의 기록 덕분에 진짜 유관순의 가족은 사실을 말할 기회를 잃었다. 유관순의 친오빠이자 독립훈장 애족장을 받고 1968년까지 생존했던 유우석선생은 자신의 집안이 기독교 집안이 아니고 그의 부친은 제사를 지냈다라는 증언을 했다. 그리고, 유관순 집안에서 유빈기(柳斌基) ․ 조인원(趙仁元) 등 향촌 유지들과 함께 교회를 세웠다는 주장 역시 사실이 아님이 밝혀졌다. 물론 유관순의 숙부 유중무선생(애족장)이 선교사를 했고, 유관순이 기독교학교인 이화학당을 다닌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유관순 집안이 기독교집안은 아닌데도 그렇게 알려진 이유는 석연치가 않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당시 친일경력의 우파들이 유관순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서도 짚어봐야 한다. 현재 유관순 신화만들기에 앞장선 박인덕이 친일파이기 때문에 그가 발굴한 독립운동가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주장은 정말 말이 안된다. 나도 독립운동사 공부하면서, 숨겨진 독립운동가가 있으면 널리 알리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그것은 박인덕의 의도와는 분명 다르다. 박인덕은 이화학당에서 교사를 했던 개화기독교여성이다. 한때는 민족운동에 가담을 했지만, 변절을 했다. 해방 이후, 숨을 죽이던 박인덕은 자신의 행적을 가려야 했다. 그 때, 무명의 유관순을 발굴한 것이다. 유관순이 등장하기 이전에 거론 되었던 인물은 ‘김마리아’였다.김마리아도 이화에 입학했던 인물이고, 박인덕이 변절하기 전에 ‘근화회’활동을 같이 했던 경력뿐만 아니라, 2,8독립선언에 적극 참여하고, 곧바로 국내로 들어와 3.1운동을 준비하며 적극 가담하였다, 물론 체포, 구금되어 3년형을 선고 받고 수감되었는데, 당시 받은 고문으로 1944년 서거 때까지 후유증으로 고생을 많이 했다. 병보석으로 풀려난 이후 상해로 망명하는 등 끊임없이 오랜 기간 동안 민족운동을 했던 분이다. 그런데, 김마리아 같은 여성이 등장하면, 참 많이 비교가 될 것이고, 자신들의 친일 행각을 감출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아무도 모르는 유관순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리고, 박인덕은 이렇게 말한다..“ 내가 독립운동 열심히 하다가 서대문형무소에 갇혔었는데..불라불라~” 근데, 이게 먹혔다. 박인덕의 친일행적은 묻혀졌고, 오히려 애국처녀 유관순과 함께 독립운동 했던 애국지사이자, 일본 놈들이 숨기고자 했던 유관순을 발굴해 낸 훌륭한 교육자가 되었다. 그리고, 정부가 만들어지기도 전인 1947년 9월 1일 <유관순기념사업회>가 설립되었다. 그 시기는 우리가 다 알 듯이 극심한 좌우대립을 겪고 있던 혼란의 시기였다. 이 시기에 유관순기념사업회가 설립되었고, 당시 문교부장이었던 오천석과 경무국장 조병옥이 명예회장을 맡아서 대대적인 홍보와 선양사업을 시작했다. 이 때 출간된 책이 바로 위에서 말한 <순국처녀 유관순전>이기도 하다. <!--[if !supportEmptyParas]--> (* 위의 복심 판결에서 언급된 조인원과 조병호는 각각 조병옥의 부친과 동생이다) 유관순의 영웅화에 대해 할 말은 너무 많다. 그러나, 이 정도만 봐도 유관순이 교과서에서 빠졌다고 저렇게 길길이 뛸 일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오히려 검증 없이 교과서에 마구 올리는 것이 더 문제가 될 것이다.물론, 유명한 사람이 한 독립운동만이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니다. 평범한 사람이 어느 날 벌떡 일어나 자신을 희생하며 민족운동에 가담하고 그로 인해 목숨을 잃거나 큰 고통을 당한 것도 우린 기억해야 한다. 그러나, 왜곡이나 미화, 과장은 경계해야 한다. 있는 그대로 보게 되는 우리의 독립운동이 오히려 더 가슴을 뛰게 할 때가 많다. 지금 유관순을 더 욕보이는 것은 바로 유관순을 이용한 무리들이다. 그들의 논리는 없다. 그저 우기고 물어뜯기만 한다. 유관순이 그렇게 중요하면, 유관순보다 더 치열하게 투쟁했던 다른 독립운동가들도 다 교학사 교과서에 실어 봐라. 그러면, 나도 교학사교과서 채택운동 할거다. 검인증교과서도 찬성할 거다. 그때나 지금이나 역사 가지고 국민들 바보로 만들지 좀 마라! <!--[if !supportEmptyParas]--> <!--[endif]--> <참고 사료> <천안시위 운동의 후문 30여명을 일시에 총살> 지난 4월 경에 천안군(충청남도) 병천시에서 장날을 이용하여 시위운동이 있었다함은 …김구응, 박종만 양씨의 주모 하에 수천여명의 군중이 맹렬한 시위운동을 행할 세 …김구응씨와 왜경찰이 서로 정론할 때에 왜적이 말이 몰려 제가 제총으로 자살하겠다 하더니 총날을 김씨의 복부에 하고 발포하야 당장에 죽인 후…늙은 모친까지 찔러 그만 세상을 하직하였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한 이화여학생의 체포 소녀의 양친은 원수에게 피살> 서울 이화학당 학생 ○○○여사는 자기의 양친이 오랑캐 왜적에게 피살을 당하여 분기의 맘을 단단히 먹고 각처로 돌아다니며 독립운동을 계속하다가 왜적의 사냥개에게 발각되어 중상함을 입고 왜적의 손에 붙들려 감옥에 피수하였더라. <!--[if !supportEmptyParas]--> <!--[endif]--> --신한민보 1919.9.2. -천안시위 운동의 후문 ******* 이 기사에서 알 수 있는 사실은, 당시 천안 시위를 주도한 인물은 김구응과 박종만이고, 김구응에 대해 비중을 두고 있다. 그리고, 이화여학생이라는 인물을 정상우선생은 유관순으로 추정하는 듯 한데 역시 조금 무리인 것 같다. 이 기사도 사실과 다소 차이가 있다. 유관순의 부친이 현장에서 순국한 것은 사실이지만, 모친은 아니다 .그리고, 피체되는 상황에 대해서도 사실과 차이가 있다.어쨌든 이런 기사가 있다. 그리고, 천안시위의 주모자로 알려지고 시위 당일인 4월 1일 현장에서 피살된 김구응은 1991년에 와서야 애국장에 서훈되었고,박종만은 서훈자 명단에서 확인이 안되고 있다. *참고논문* 임명순 - <유관순 열사 1심 형량 관계 「형사사건부」 소개> 정상우 - <3ㆍ1운동의 표상 ‘유관순’의 발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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