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전하는 차원부(車原?)의 《설원록(雪寃錄)》은 대개 거짓말이 많지만 또 채택할 만한 것
도 있다.
원부는 고려의 간의(諫議)로서 우리 태조(太祖)에게 총애를 받았는데, 권귀(權貴)인 하륜(河崙)과
는 사이가 좋지 않았다. 그래서 하륜은 태종(太宗)에게 참소하여 말하기를, “원부는 바로 정몽주
(鄭夢周)와는 의종 형제이오며, 공정비(恭靖妃)의 종조(從祖)이오니 장차 이롭지 못할 것입니다.”
하였다.
태종은 그 말을 믿고서 태조에게 아뢰려고 하자, 하륜은 일이 발각될까 두려워서 말하기를, “적당
(賊黨)이 내시(內侍)와 사통하고 있으니 상(上)께 아뢰면 반드시 누설될 것입니다. 일이 급하오니
제가 환시(宦侍) 두세 사람을 데리고 함께 궁성(宮城)의 수구(水口)에서 변을 기다리는 것이 옳겠
습니다.” 하였다.
그리고 또 태종의 뜻이라 하여 두 공자(公子)에게 전하기를, “장차 아우와 더불어 후원(後苑)에서
노닐려고 한다.” 하였다. 두 공자가 바깥담을 나가자 하륜은 역사(力士)를 시켜 두 공자를 대(?)
아래로 끌어내어 마침내 간 곳을 알지 못했다. 하륜은 드디어 사칭하기를, “공자가 적전(赤田)으로
달아났다.” 하였다.
적전이란 북도(北道) 덕원군(德原郡)에 있는데 일명을 용주리(湧珠里)라고도 한다. 목조(穆祖)가
삼척(三陟)으로부터 이곳에 이사를 와 살면서 익조(翼祖)를 낳았으며, 뒤에는 경흥(慶興)으로 이사
했고, 또 적도(赤島)로부터 이곳에 돌아와서 이름을 적전으로 고쳤다. 또 함흥으로 이사했다가 얼
마 안 되어 적전으로 다시 돌아왔는데 이는 그 땅이었다.
태조가 드디어 적전으로 거둥하자 이에 하륜은 차씨 집안의 80여 명을 죽이어 이로 인해 자손이
고단해졌다. 세상에선 아무도 그 일을 아는 자가 없다. 오산(五山) 차천로(車天輅)는 바로 그의 7세
손이라 한다.
이익은 차원부의 설원 과정을 믿지 못 했던 것이 아니라 지금 세상에 전하는 설원록을 믿지 못 한다고 하셨다. 당대의 설원 과정이 지나면서 위작이 첨언 되었을 수도 있을 것이라 생각하신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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