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차씨의 유래( 車氏의 由來 )
- 차씨의 유래 (車氏의 由來) 황제(皇帝)의 후손인 신갑(辛甲)께서 고조선 평양 일토산 아래에 살면서 성을 왕씨로 하고 이름은 조명(祖明)이라 하였다. 고조선 말 그의 후손 왕몽(王蒙)이 기자조선 준왕(準王)의 모함을 받아 칠남 임(琳)과 함께 지리산으로 들어가 숨어서 살게 되었다. 이때 몽은 자손 번창을 이유로 왕(王)씨 성(姓)을 전자(田字), 신자(申字), 차자(車字)로 고쳐 성을 차씨로 하고 이름을 무일(無一)이라 하였다. 신라 태조가 경주에 도읍을 정하고 나라를 세울 때 車無一께서 시중 벼슬에 오르고 왕으로부터 차씨 성을 받게 되어 차씨 득성시조(得姓始祖)가 되었다. 차 무일의 32세손인 건갑(建甲 또는 建申)께서 신라 39대 소성왕 때 승상 벼슬에 있었는데 소성왕께서 태자를 잘 보살펴 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승상께서 왕의 유언에 따라 12세에 보위에 오른 애장왕을 보필하다가 아들 승색(承穡)에게 다시 왕을 보필할 것을 부탁하고 별세하시니 왕께서 왕례로서 기장 만화동에 예장케 하였다. 이때부터 차능(車陵)이라 칭하게 되었으며 기장현도 차성(車城)이라 불렀다. 또 신위도 소성왕 종묘에 배향되었다. 왕의 숙부인 김언승(金彦昇)이 반역하여 왕위를 빼앗아 헌덕왕이 되었다. 차승색께서는 충성심에서 아들 차공숙(車恭叔)과 더불어 헌덕왕을 암살하려다 누설되어 아들을 데리고 황해도 구월산으로 피신, 류(柳)씨로 변성하고 이름을 백(栢 또는 桓)으로, 아들도 숙(淑)으로 고쳐 살았다. 둘째 아들 차 공도(車 恭道)는 강남으로 피신 구성인 왕씨로 복성하였는데 이분이 고려 태조 왕건의 증조부이신 원덕대왕(元德大王)이시다. 이런 인연으로 車氏는 고려 건국에 큰공을 세웠고 고려조의 차씨는 왕씨와 똑같은 왕족 대우를 받았다. 고려 태조 왕건께서 후삼국을 통일할 때 가성 柳氏 6세인 류 해(柳 海)께서 장정을 수송하여 통일에 기여하였으므로 공을 삼한통합벽상이등공신에 봉하고 본성이 車氏이기에 조상을 잊지 않게 하기 위하여 차달(車達)이라는 호를 내렸다. 큰 아들 차효전(車孝全)은 통일에 필요한 군량미를 헌납하였기에 개국 수공자로 대광(大匡之伯)의 벼슬이 제수 되었으며 연안군(延安君)에 피봉되었다. 연안에 식읍 천호도 받으시고 옛성 차씨로 복성케 되고 종적을 연안(延安)으로 하니 연안 차씨 득관 시조(得貫 始祖)가 되었고 둘째 아들 효금(孝金)은 류씨의 시조가 되었다. 이때부터 두 형제분이 차씨와 류씨로 각각 분성되었다. 차문은 신라, 고려조에 수 많은 문무장상이 대를 이어 배출된 명문 집안이다. 고려 공민왕때 군부판서 차포온(龍山君 車蒲溫)은 고려가 원(元)의 간섭에서 벗어 나려는 때 국방 및 외교로 뛰어난 활약을 하신 고려의 명신이며 차문의 자랑스러운 현조이시다. 또 불의에 굴하지 않았던 고려말 성리학의 대가이시며 고려조(高麗朝)의 간의대부(諫議大夫)이신 운암공 차원부(雲巖公 車原 )께서 조선 개국에 참여하지 않은 이유와 하륜 등 사얼(四孼)들의 모략으로 억울하게 추살 되시고 차씨 문중도 멸족지화를 당하였다. 이 사실을 알게된 이태조의 질책으로 태종이 잘못을 뉘우치고 공에 대한 치제(致祭)를 명하고 아울러 의정부좌찬성 벼슬을 추증했고 그후 문절(文節)이란 시호도 내렸다. 다행히 세조 2년에 왕명으로 박팽년 외 5인의 기문과 유신석학 48인의 응제시와 예조참판 하위지의 서문으로 엮은 차원부 설원기(車原 雪寃記)에 의하여 억울한 사실이 소명되어 광명을 찾기는 하였으나 차씨 문중에 대한 수난은 계속되었다. 차씨 문중에는 세조 13년 이시애난 평정에 공을 세운 강열공 차운혁(車云革), 임진왜란시 평양성 로포문(露布文)으로 명나라를 놀라게 한 천하 문장 오산공 차천로(車天輅)와 같은 명조 현조님들이 많이 계셨다. 근대에는 포우단(砲牛團)을 만들어 독립 운동을 하신 차도선(車道善), 대동공보(大同共報)를 창간, 독립 운동을 하신 차석보(車錫甫), 대한민국 임시 정부 국무위원으로 큰 활약을 하신 차이석(車利錫)외 많은 독립 유공자에게 정부 건국 훈장이 수여 되었으며 이 분들이 차씨 문중을 빛내었다. 차씨 문중은 절개 굳은 충신, 공신, 의사와 열사가 많은 종문이며 명문 갑족다운 긍지를 잃지 않고 자자손손 계승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연안 車氏 宗親會 中央 本部 지음 차 원 부 설 원 기 응 제 시 편 발 췌 車原 雪寃記 應製詩編에서 拔萃 이례장 응 제시 참판전 성 군 李禮長 應製詩 (參判全城君) 수 둔 유 주 목 토 향 誰遁儒州木兎鄕 인고 누가 유주(儒州文化 古縣名) 목토(木兎:柳字의 破字)마을로 숨었는가? 신 라 승 상 후 정 량 新羅丞相後貞良 일세 신라 승상 후손 정량(貞良:신라승상 차제능의 후손 승색, 공숙 부자)일세 송 원 행 미 궁 원 노 松原幸未窮寃老 이면 송원에 요행이 억울하고 원통한 노인의 불행이 아니었다면 하 해 계 림 시 성 향 何解鷄林是姓香 이랴 어찌 계림(鷄林:신라의 서울)의 이 성(姓:車氏 姓을 말함)의 덕화(德化)를 깨닫겠는가? 헌덕왕(憲德王) 언승(彦昇)이 임금을 죽이고 자립(自立)하니 승색(承穡) 부자(父子)는 예양(豫讓)을 본 받아 다리 밑에 몸을 숨겨 나라의 원수를 갚으려 도모하다가 일을 이루지 못하고 이 계략이 실패(失敗)하게 되어 유주(儒州)로 달아나 그 성명(姓名)을 고치고 종적( 迹)을 아주 감추고 천직(賤職)으로 고용(雇用)되어 생활(生活)하니 진실된 마음을 지키는 것이 천억(千億) 같이 멀고 어렵더라. 신(臣 : 李禮長)이 또 원부(原 )의 편계(片系)를 살펴보니 신라(新羅) 미추왕(味鄒王)때에 승상인 제능(濟能) 이하(以下) 등국(登國), 은포(殷甫), 연광(延廣), 휘만(徽曼), 지(智), 온백(溫伯), 순(楯), 엄( ), 루한(婁漢), 순계(盾階), 단식(段式), 헌(憲), 도강(渡康), 검부(儉夫), 건갑(建甲), 승색(承穡), 공숙(恭叔)으로 계승되었는데 차제능(車濟能) 이하(以下) 18대 중에서 승상(丞相)이 14세나 있었다. 고려전실록(高麗前實錄)이 중국(中國)으로 가지 아니하였다면 선현(先賢)의 출처(出處)가 다만 어찌 이것뿐이리요? 또 승색(承穡)은 고려(高麗) 개국공신(開國功臣)인 차달(車達)의 5대조이다. 비록 양곡(糧穀)을 운송(運送)한 공(功)으로 특별히 차달(車達)이란 호(號)를 주었다고 전해지고 있으나 원 뜻은 조상(祖上)의 본성을 잊지 않게 하려는데 있었다. 그 아들 이름은 효생(孝生)인데 효전(孝全)으로 한 것은 장자(長子)로서 조상(祖上)의 홍열(弘烈)을 온전하게 승계(承繼)하라는 뜻이다. 차달의 이름은 해(海)이시다. 다만 차달(車達)로 나타낸 것은 본(本) 성씨(姓氏)의 충정(忠貞)을 뜻하는 것이었다. 송원(松原)의 억울하고 원통한 사람의 울분이 없었다면 누가 신라 계림(鷄林)의 원 고향의 성씨인 차씨(車氏)의 덕화(德化)를 어찌 알겠는가? 차상도(車尙道) 처(妻) 김씨(金氏)의 이성(異姓) 오촌질(五寸姪)인 신(臣) 이례장(李禮長)은 받들어 알리고 이 시(詩)에 주석(註釋)을 함. 延安 車氏 宗親會 中央 本部 의덕사 약선(懿德祠 略選) 우리 연안 차씨 종친회 중앙 본부(延安 車氏 宗親會 中央 本部)는 전국 종친(全國 宗親)의 열성(熱誠)어린 협조(協助)를 얻어 경기도 평택시 장안동(京畿道 平澤市 長安洞)에 길지(吉地)를 선정(選定)하여 연안 차씨(延安 車氏) 득관시조(得貫始祖) 고려 개국 정사 공신(高麗 開國 定社 功臣) 수공자(首功者)이신 대광지백(大匡之伯) 연안군(延安君) 휘효전(諱孝全)을 주위(主位)로 봉안(奉安)하고 역대(歷代)의 작위조(爵位祖) 각 파조(派祖) 명조(名祖)의 위패(位牌)를 배향(配享)하는 규모(規模)의 위풍(威風)을 갖춘 사당(祠堂)을 건립(建立)하여 이를 의덕사(懿德祠)라 칭명(稱名)하고 서기 1996년 5월 12일에 전국(全國)에서 운집(雲集)한 종친 일족(宗親 一族)과 타성(他姓)의 내빈제위(來賓諸位)의 참례하(參禮下)에 성대(盛大)한 준공(竣工)의 행사(行事)를 거행(擧行)하였다. 연안 차씨 일족(延安 車氏 一族)은 고려(高麗)를 개국(開國)한 공신(功臣)의 후예(後裔)로서 고려 명문(高麗 名門)인 대문벌(大門閥)의 후손(後孫)답게 숭조정신(崇祖精神)으로 헌금하여 득관시조(得貫始祖) 및 각 현조(賢祖)님의 위패(位牌)를 모시고 봉사(奉祀)할 수 있는 사당(祠堂)을 영조(營造)하여 문중(門中)을 결집(結集)하는 묘역(廟域)을 마련하게 된 것이다. 득관시조(得貫始祖)의 초휘(初諱)는 효생(孝生)인데 생자(生字)에 우측(右側)에 한 획을 더하여 전자(全字)로 한 것은 장손(長孫)으로 조상(祖上)의 홍열(弘烈)을 승계(承繼)하여 조상(祖上)에 대한 효도(孝道)를 온전하게 하라는 뜻으로 이름을 효전(孝全)으로 하였으며 자(字)는 량운(良運) 호(號)는 강촌(江村) 시호(諡號)는 무열(武烈) 이시며 벼슬은 대광지백 연안군(大匡之伯 延安君)이시며 고려 개국 정사 공신(高麗 開國 定社 功臣)이시다. 공(公)의 고(考)는 대승공 차달(大丞公 車達)이며 신라 승상(新羅 丞相) 차공 휘건갑(車公 諱建甲)의 8세손(世孫)이다. 차원부 설원기(車原 雪寃記)와 공(公)의 사적(史蹟)을 보면은 차 달 지 어 정 려 실 수 근 지 일 “ 車達之於丁麗室輸勤之日 하고” 역(譯)하면, 차달은 고려 조정에 장정을 나날이 부지런히 수송해주고 효 전 지 어 당 왕 사 미 고 지 시 “ 孝全之於當王事靡 之時 에” 역(譯)하면, 효전은 왕사(王事 : 임금의 명에 의하여 사역함)에 미고(靡 : 고통 스럽고 괴로운 것)를 당하였을 때에 여 흥 원 진 대 지 속 수 “ 輿興原賑貸之粟樹 하고” 역(譯)하면, 흥원(興原 : 구월산 주변 지명임) 땅에 조를 심어 진대(진대 : 없는 백성에게 곡식이나 물건을 빌려 줌)하고 현 능 정 사 지 로 “ 顯陵定社之勞 하다” 역(譯)하면, 현능(顯陵 : 고려 시조의 묘 호임)과 정사(定社 : 개국(開國)하여 종사를 정하는 공을 말함)에 힘썼다. 국 이 위 판 출 거 승 계 량 도 운 미 정 남 “ 國以爲辦出車乘繼粮道運米征南 하니” 역(譯)하면, 나라에서 정남(征南 : 남쪽을 정벌 라제 정벌임)할 때 수레를 판출(辦出 : 갖추어 구해 냄)하여 계양(繼粮 : 한해 농사지은 곡식으로 일년 먹을 수 있는 식량)을 실어 운송하니 특 증 기 부 이 차 위 달 세 적 지 호 “ 特贈其父以車爲達世績之號 하고” 역(譯)하면, 특별히 그 아버지에게 차씨(車氏)의 세(世)를 이어 연결하라고 호(號)로 주고 별 사 차 씨 이 표 효 전 수 공 지 성 “ 別賜車氏以表孝全首功之姓 이다” 역(譯)하면, 별도로 차씨(車氏)는 효전(孝全)의 수공(首功)을 표하는 성(姓)으로 주었다. 이 이 식 읍 천 호 지 봉 “ 而以食邑千戶之奉 하고” 역(譯)하면, 그리고 식읍 천호를 봉하고 잉 종 적 연 안 지 지 “ 仍宗籍延安之地 하다” 역(譯)하면, 이에 종적(宗籍 : 관행)을 연안 땅으로 하였으며 려 태 조 특 명 왈 념 석 차 씨 지 홍 열 기 불 가 망 야 “ 麗太祖特命曰念昔車氏之弘烈旣不可忘也 요” 역(譯)하면, 려태조가 특별히 명하여 말씀하시기를 옛 차씨를 생각하면 원래의 홍열(弘烈 : 조상들이 쌓아 올린 공적과 덕화를 말함)을 잊을수 없고 저 간 류 씨 지 모 칭 우 불 가 폐 야 “ 這間柳氏之冒稱又不可廢也 라” 역(譯)하면, 그간 류씨로 모칭(冒稱 : 冒姓과 같은데 남의 성을 가칭(假稱)한 것을 또 폐하는 것도 옳지 못하다. 장 자 효 전 승 습 상 조 지 홍 열 이 위 상 조 지 구 성 차 씨 야 “ 長子孝全承襲上祖之弘烈而爲上祖之舊姓車氏也 요” 역(譯)하면, 장자 효전은 조상의 홍열을 승계(承繼 : 시조로부터 대대로 이어 끊이지 않게 이어 가라는 뜻이다. 이 말은 류씨로 가성(假姓)을 쓰신 1세(世)부터 6세조(世朝)까지 구성(舊姓) 차씨로 복성하라는 뜻이다)하여 조상의 구성인 차씨로 하라하고 차 자 효 금 잉 위 류 씨 명 사 “ 次子孝金仍爲柳氏命賜 라” 역(譯)하면, 차자 효금은 그대로 류씨로 하도록 명사(임금이 명하여 내려줌)하노라 하고 사 호 차 달 지 의 부 망 상 조 지 본 성 야 “ 賜號車達之意不忘上祖之本姓也 라” 역(譯)하면, 호(號)를 차달(車達)로 내려 주는 뜻은 조상(祖上)의 본성(本姓)을 잊지 말라는 것이다. 이때부터 형제분이 차씨(車氏)와 류씨(柳氏)로 갈라진 것이며 형(兄) 효전(孝全)은 연안 차씨(延安 車氏) 득관시조 일세(得貫始祖 一世)이시며 동생 (孝金)은 문화 류씨(文化 柳氏)의 득성 및 득관시조 일세(得貫始祖 一世)이시다. 의덕사(懿德祠)에 봉안(奉安)된 현조(賢祖)님의 위패(位牌)는 주위(主位)에 대광지백 연안군(大匡之伯 延安君) 이하(以下) 배향 선조(配享 先祖)는 7세 서평백 휘계한(西平伯 諱稽漢), 8세 유주백 휘자순(儒州伯 諱子順), 16세 중흥백 휘송우(中興伯 諱松祐), 17세 도충제 휘득규(都摠制 諱得珪), 17세 송림백 휘덕규(松林伯 諱德珪), 18세 좌승상 용산군 휘포온(左丞相 龍山君 諱蒲溫), 19세 문학공 휘수동(文學公 諱壽童), 19세 전서공 휘명동(典書公 諱命童), 19세 월파공 휘종로(月波公 諱宗老), 19세 상장군 휘안로(上將軍 諱安老), 20세 문절공 휘원부(文節公 諱原 ), 20세 시중공 휘인부(侍中公 諱仁 ), 20세 정당문학공 휘중부(政堂文學公 諱仲 ), 21세 중랑장공 휘안경(中郞將公 諱安卿), 21세 병마사공 휘안기(兵馬使公 諱安耆), 21세 강열공 휘운혁(剛烈公 諱雲革), 20세 밀직공 휘밀부(密直公 諱密 ), 22세 성균진사공 휘상도(成均進士公 諱尙道), 26세 이제공 휘식( 齊公 諱軾), 27세 오산공 휘천로(五山公 諱天輅), 27세 창주공 휘운로(滄州公 諱雲輅), 이상(以上) 22위(位)를 봉안(奉安)하여 매년(每年) 음력(陰曆) 십월이일(十月 二日)에 전국 일가(全國 一家)가 운집(雲集)하여 세향(歲享)을 성대(盛大)히 거행(擧行)하고 있다. 2001年 8月 日 延安 車氏 宗親會 中央 本部 謹撰 우리 나라 族譜의 효시(嚆矢) 족보(族譜)는 한 가문(家門)의 선조(先祖)로부터 조상(祖上) 대대(代代)로 그리고 후세(後世)에 이르기까지 씨족(氏族)의 혈통(血統) 세계(世系)와 모든 생활사(生活史)를 기록(記錄)하고 조상(祖上)의 지난날의 업적(業績)과 혈통 관계(血統 關係)를 후세(後世)에 잘 알리고 동족혈통간(同族血統間)의 정감(情感)과 단결(團結)을 돈독(敦篤)하게 하고 숭조목종(崇祖睦宗)의 근원(根源)이 되도록 하는 가문(家門)의 보감(寶鑑)이다. 또 족보(族譜)는 씨족(氏族)과 가문(家門) 계통(系統)을 기록(記錄)하는 서책(書冊)이며 씨족(氏族)의 혈통 근원(血統 根源)과 선조(先祖)의 사적(事蹟)을 소상하고 바르게 기록(記錄)하여 후세(後世)에 전수(傳授)하는 유일(唯一)한 수단(手段)이기도 하다. 이러한 서책(書冊)을 족보(族譜), 세보(世譜), 가보(家譜) 등으로 부르며 규모(規模)에 따라 대동보(大同譜), 파보(派譜), 가승보(家乘譜) 등으로 구분(區分)하여 부르기도 한다. 조선 시대(朝鮮 時代)에 와서는 족보(族譜)를 제대로 갖춘 집안이 양반(兩班) 계급(階級)의 후예(後裔)로 인정(認定)되고 그에 따라 대우(待遇)를 받을 수 있을 정도(程度)로 족보책(族譜冊)이 소중(所重)한 보감(寶鑑)이 되었다. 대동보(大同譜)는 한 씨족(氏族)의 호적(戶籍)이다.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서 그 나라의 호적(戶籍)에 등재(登載) 되어야 그 나라 국민(國民) 자격(資格)과 권리(權利)가 인정(認定)이 되는 것처럼 사람이 태어나서 한 씨족(氏族)의 대동보(大同譜)에 등재(登載)되지 않으면 정통 씨족(正統 氏族)으로 인정(認定)되지 않으며 또한 권리(權利)도 향유(享有)하지 못해온 것이 우리의 종족사(宗族史)였다. 이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족보(族譜)를 소중(所重)하게 생각(生覺)하고 오래 오래 이를 소장(所藏)하고 있는 것을 가문(家門)의 영광(榮光)으로 여기고 또 자부심(自負心)을 가지고 있다. 자기(自己) 가문(家門)의 위상(位相)을 높이기 위(爲)하여 많은 종문(宗門)들은 자기 가문(家門)의 자랑스러운 명조(名祖)가 계셨음을 족보(族譜)에 기록(記錄)하고 표시(表示)하여 명문(名門)임을 입증(立證)하고 있다. 우리 나라 족보(族譜)에 관하여 살펴보면 고려(高麗) 숭의회(崇義會)(사단법인(社團 法人))에서 편집(編輯)한 여말(麗末) 충의열전(忠義列傳)이란 책(冊)에 “고려조(高麗朝) 공민왕 말기(恭愍王 末期)에 성리학자(性理學者)로써 간의대부(諫議大夫)를 지내신 운암공(雲巖公) 차원부(車原 )께서 여흥왕(驪興王 : 우왕(禑王)) 14년(年) 무진(戊辰 1388)년(年)에 종문(宗門)의 역사(歷史)를 정리(整理)하여 왕씨(王氏) 차씨(車氏) 류씨(柳氏) 삼 성(三 姓)의 보판(譜版)을 판각(板刻)하고 해주(海州) 신광사(神光寺)에 보관(保管)하였다.”라고 하였으며 또 서울 대학교(大學校) 한국사(韓國史) 교수(敎授)인 한우근선생(韓佑劤先生)과 이태진선생(李泰鎭先生)등이 편저(編著)한 한국(韓國) 문화사(文化史)의 조선(朝鮮) 전기편(前期篇)에서도 “현재(現在)까지 밝혀진 바로는 고려(高麗) 말엽(末葉)에 해주(海州) 신광사(神光寺)에 보판(譜版) 판각(板刻)이 보관(保管)되었다는 연안(延安) 차씨(車氏) 족보(族譜)가 가장 오래된 족보(族譜)이며 우리 나라 족보(族譜)의 효시(嚆矢)라고 기술(記述)하고 있다. (박팽년(朴彭年)이 기술(記述)한 차원부(車原 ) 설원기(雪寃記) 참조(參照)) 그 후에 연안(延安) 차씨(車氏)와 동원(同原)인 문화(文化) 류씨(柳氏)가 15세기(世紀) 초엽(初葉)에 이른바 영락보(永樂譜)를 만들었으며 15세기(世紀) 후반기(後半期)에 안동 권씨(安東 權氏), 양성 이씨(陽城 李氏), 진주 강씨(晋州 姜氏) 등이 잇따라 보판(譜版) 또는 세고(世稿)를 엮었다. 이 시기의 족보(族譜)들은 편간(編刊)의 시기(時期)에 다소 선(先)과 후(後)의 차이(差異)는 있으나 한결 같이 가문(家門)의 현달(顯達)이 고려(高麗) 후기(後期)에서 시작(始作)하여 당세(當世)에 이른 것을 밝히려는 것이 공통점(共通點)이다. 이러한 글들을 보면 차씨(車氏) 조상(祖上)님들의 그 시대(時代)의 권위(權威)와 위상(位相)을 알 수가 있으며 우리의 가문(家門)이 삼한(三韓)의 갑족(甲族)이며 귀족 명문(貴族 名門)이었음을 짐작할 수가 있다. 이와 같이 차문(車門)은 신라(新羅), 고려조(高麗朝)에서 무려 스물 여덟 분의 승상(丞相)을 배출한 집안이며 수많은 명조(名祖) 현조(顯祖)를 모신 종문(宗門)이다. 우리 나라 족보(族譜)를 제일 먼저 만들어낸 선조(先祖)님을 모신 것을 참으로 자랑스럽게 생각(生覺)하여야 할 것이다. 延安 車氏 宗親會 中央本部 대 광 지 백 연 안 군 사 적 大匡之伯 延安君 事蹟 대 승 공 호 차 달 장 자 (大丞公 號車達 의 長子) 공 휘 효 전 자 량 운 호 강 촌 시 무 열 안 서 희 찬 집 정 지 公諱孝全 字良運 號江村 諡武列按徐熙撰集鄭知 상 잡 기 김 방 경 초 당 일 기 운 공 지 부 대 승 공 정 려 실 常雜記金方慶草堂日記云公之父大丞公丁麗室 수 근 지 일 공 지 당 왕 사 미 고 지 시 여 흥 원 진 대 지 속 수 輸勤之日公之當王事靡 之時輿興原賑貸之粟樹 현 능 정 사 지 노 국 이 위 판 출 거 승 계 량 도 운 미 정 남 顯陵定社之勞國以爲辦出車乘繼糧道運米征南 특 증 기 부 이 차 위 달 세 적 지 호 복 사 차 씨 이 표 수 공 지 성 特贈其父以車爲達世績之號復賜車氏以表首功之姓 봉 대 광 지 백 연 안 군 식 읍 천 호 지 잉 적 연 안 封大匡之伯延安君食邑千戶之仍籍延安 위 시 조 배 정 열 부 인 해 주 최 씨 묘 재 연 안 부 금 이 면 爲始祖配貞烈夫人海州崔氏墓在延安府今宜面 금 암 동 자 좌 지 원 야 金巖洞子坐之原也 역(譯) 대광지백연안군(대승공 호 차달(車達)의 장자)의 사적 공(公)의 휘(諱) 효전(孝全) 자(字) 량운(良運) 호(號) 강촌(江村) 시(諡) 무열(武烈)이시다. 조사하여보면 서희(徐熙)의 찬집(撰集 : 골라 모아서 만든책)과 정지상(鄭知常)의 잡기(雜記 : 여러 가지 일을 비망(備忘)으로 적음)와 김방경(金方慶) 초당(草堂 : ①초가집(草家) ②자기 집의 겸칭(謙稱))일기에 이르되 공(公)의 아버지 대승공(大丞公)은 려실(麗室 : 고려조정)에 장정(壯丁)을 나날이 부지런히 수송하였고 공(公)은 왕사(王事 : 임금의 명에 의한 사역)에 미고(靡 : 쓰리고 아픈 고통을 말함)를 당(當)하였을 때에 흥원(興原 : 구월산 주변 지명을 말함) 땅에 조를 심어서 진대(賑貸 : 생활이 어려운 사람에게 물건을 빌려줌)하고 현릉(顯陵 : 고려 시조의 묘(墓)의 이름)과 정사(定社 : 개국...
출처 : Daum 지식
글쓴이 : 용지니요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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