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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왕건이 세웠던 고려의 건국 과정에 대해서 자세히 알고 싶습니다.
[답변]
918 년에 왕건이 쿠데타를 통해 궁예를 몰아내고 왕위에 오르기까지의 내용을 설명하겠습니다. 신라 진성여왕 10년(896) 왕건의 아버지(용건)는 아들을 데리고 자신이 다스렸던 송악군을 궁예에게 바치고 그의 휘하로 들어갑니다. 당시 궁예의 군사력을 물리칠 만한 세력이 못되었기 때문에 왕건의 아버지는 자신의 경제권-바다길을 통해 축적한 경제력-을 보호받기 위한 것입니다. 한편 궁예로서도 용건은 막대한 재력을 지닌 개성 지방의 첫째가는 호족으로 이용가치가 충분했기 때문에 양자의 타협은 쉽게 이루어졌습니다. 용건부자가 귀부해 오자 궁예는 용건을 금성(금화) 태수에 임명하고 왕건은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송악 성주로 삼고 정기대감에 임명합니다.
이후 왕건은 장군으로서 여러 전공을 세워 신임을 얻게 됩니다. 왕건은 양주, 광주, 충주, 청주, 남양, 괴산 등지의 싸움에서 전공을 세웠으며, 특히 909∼910년에 있었던 나주 지방의 경략은 후백제에게 치명적인 영향을 주는 것이었습니다. 이후에도 왕건은 전라도 서해와 남해안을 점령한 것을 토대로 해안을 따라 경상도 해안에 진출, 후백제의 활동 영역을 완전히 봉쇄해 버렸습니다. 이러한 전공에 따라 왕건의 지위도 변하였는데 나주전 승리 후에 해군대장군, 덕진포 싸움 승리 후 파진찬으로 시중이 되어 '1인지하 만인지상'의 자리에 오릅니다.
이렇게 왕건이 바다와 육지를 종횡하며 혁혁한 공을 세워 여러 장수들의 구심점으로 신뢰를 쌓아 가고 있는 것에 비해, 궁예는 자만에 빠져 몰락을 자초하였습니다. 즉 자신의 정치적 기반이 강화되고 국가 기반이 확고해지면서 궁예는 904년에 국호를 고려에서 마진으로 고치고, 신라에 대한 적개심을 드러내며 민심을 떠나게 하였습니다. 이듬해에는 수도를 송악에서 철원으로 옮기고 궁궐과 전각을 수리하고 사치에 국력과 민력을 낭비하는 등 민심을 떠나게 하였습니다. 지금까지 명분으로 내세운 고구려의 부흥이라는 기치는 사라지고 영웅주의에 빠져 권력을 자신의 욕망을 채우는 수단으로 변질시키며 몰락의 길로 접어든 것이지요. 자신을 살아 있는 미륵불로 칭하며 마치 오늘날 사이비종교의 교주처럼 행동하였습니다. 또 포로로 잡은 적장을 잔혹하게 죽이거나 항복해 오는 신라인에 대한 학살 등은 결국 백성들로 하여금 난세를 수습할 새로운 지도자를 갈망하게 하였던 것입니다. 급기야 915년에는 자신의 부인 강씨와 두 아들을 죽이고 문무관료들 역시 반역죄로 무고하게 죽여 심할 때는 처형되는 자가 100명이 넘었다고 합니다. 이것은 당시 궁예가 불안해 할 정도로 휘하에 반궁예 세력이 많아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궁예와 그의 정적들간의 대립이 심화되고, 궁예의 폭정이 심화되자 결국 918년 홍유, 배현경, 신숭겸, 복지겸 등이 주도한 왕건의 왕위 추대 모의는 무혈혁명으로 싱겁게 끝나게 됩니다. <박한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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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건의 융화정책의 효과 |
분류 | 고려 | ||||
[질문]
[답변] 918 년 태조 왕건은 한 나라의 왕으로 즉위하였지만 스스로 획득한 왕권이 아니라 비슷한 세력을 지닌 다른 호족들의 추대로 왕위에 오른 것뿐입니다. 물론 많은 호족 중에서 대표가 될 정도로 수많은 호족 가운데 유력한 세력이었고 그동안 국가에 끼친 공도 남달랐던 사람임엔 틀림이 없지요. 그러나 즉위 직후에 여러 차례의 정권탈취 기도 사건 ─ 환선길, 이흔암, 임춘길 등의 모반사건 ─ 이 일어난 것을 볼 때 즉위초 왕건의 권위가 어떠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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