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덕도는 역사의 섬이다. 선사시대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하였고, 국토의 최남단에 위치하여 일본의 침략이 잦았던 곳으로 조선시대에는 군사기지와 곳곳에 성을 축조하였으며 병기를 만들던 곳집이 있었다고 한다. 일제시대에 왜군이 외양포에 만든 군사기지와 인공동굴 등 아픈 역사의 현장을 남기고 있다. 국토수호와 나라사랑의 마음이 절로 생겨난다. 바다가 바라다 보이는 등산로, 봉수대, 빼어난 해안선, 전통어로방식인 숭어들이를 볼 수 있고 유자와 대구가 유명한 곳, 곳곳에 산재된 문화유적들, 꼭 한번 다녀올 만한 곳이다.
가덕도는 보개산이 바다 가운데 침몰되었다가 다시 솟아서 이루어 졌다는 전설이 있는 부산 최대의 섬이다. 최고봉인 연대산(459.4m)을 위시하여 수많은 산들이 펼쳐져 있으며, 해안선을 따라 동북쪽으로 눌차·동선 사이를 이어주는 주변 백사장에서부터 기도원앞 바닷가의 경관, 동남쪽으로 대항 새바지의 넓은 자갈밭과 용두암을 시작으로 펼쳐지는 동백숲과 아동섬일대와 동두말, 가덕도 등대 주위의 깎아지른 듯한 기암괴석, 서남쪽으로 돌아 외양포 해수욕장, 두문의 길게 뻗은 솔섬, 천수말 코바위 등 가덕도는 해금강 절경을 방불케 한다.
(자료:강서구청 문화관광)
답사일시: 2010년 10월 9일(토) 흐리고 가끔 비
답사코스: 선창-장항고개-두문마을-천성마을-대항고개-대항마을-외양포마을-선창-천가동 천가초등학교 내 척화비
선창에서 두문마을 가는 도중 장항고개 주차장에서 잠시 휴식. 한창 공사중인 신항만의 풍광이 한눈에 들어온다.
새로운 역사를 준비하는 신항만의 모습과 멀리 좌측으로부터 천자봉-시루봉-불모산이 차례로 보인다
두문마을에서 바라본 거가대교
두문(斗文)마을은 조선중종 갑진 1544년에 천성보(天城堡)가 설치되면서 마을이 이루어지기 시작해서 서중 남중과 함께 옛 창원군의 천가면 천성리를 형성하였으나 1989년부터 부산직할시 강서구로 편입되었음
대항마을 등대(차량은 대항분교에 주차: 금,토,일요일은 임시주차장으로 활용)
대항마을에서 외양포마을로 넘어가면서 바라본 연대봉. 대항에서 외항마을까지 차량으로도 갈 수 있고 걸어서는 15분정도 걸린다.
외양포마을에서 일제시대때 만들어진 우물 5개를 확인할 수 있었다.
지붕이 남아있는 우물은 지금도 농업용수로 사용중인 것으로 보였다.
외양포마을에서 가덕도등대로 넘어가는 고개에서 바라본 외양포마을과 연대봉의 모습. 마을 오른쪽 언덕에 일제시대 포대진지유적지가 있다
등대로 가는 길은 군부대의 허가를 얻어야 갈 수 있으며 군부대지역이라 일반인 출입금지라고 한다
외양포마을 바닷가 풍경. 밀려온 쓰레기로 지저분하지만 대체로 물은 깨끗한 편이다
일본군막사로 사용하다가 일본군이 물러간 후에 대항주민과 집없던 사람이 불하 받아 사용하고 있지만 외양포 마을전체가 국가소유인지라 신축도 보수도 할 수 없다. 세월이 그대로 멈추어진듯 일제시대에 지어진 집들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외항마을에 1905년경 사령부가 있었으나 마산으로 옮겼다가 진해로 옮겨갔다.포대진지 입구의 표지석에는 사령부발상지지(司令部 發祥之地)라고 쓰여져 있으며 뒤에는 소화 11년 6월(1936)이라고 쓰여져 있다
포대진지의 모습. 포대진지를 위장하기 위해 심은 대나무들이 아직도 그흔적이 남아 푸르다
염소 한마리가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다
외양포마을을 떠나면서 고개에서 바라본 마을풍경
척화비를 세운 시기는 고종 8년(1871)으로, 후에 임오군란(1882)이 발생하고 대원군이 청나라에 납치되자 일본공사의 요구로 대부분 철거되고, 현재는 이처럼 몇 기의 비들만 곳곳에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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