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리태니커 (05-01-01 00:00:00) | 추천: 4 조회: 253 | |
성(姓)의 하나.
문헌상으로는 130여 본이 전하나, 오늘날 비교적 계통이 자세한 본으로는 문화(文化)·진주(晋州)·고흥(高興)·전주(全州)·풍산(豊山)·서산(瑞山:瑞寧)·강릉(江陵)·하회(河回)·선산(善山)·거창(居昌)·고령(高靈)·경주(慶州)·육창(陸昌)·인동(仁同)·연안(延安)·배천(白川)·정주(貞州)·약목(若木)·부평(富平) 등 52개 본이 있다.
유씨의 대종을 이루는 문화유씨는 태조 왕건을 도와 후삼국 통일에 공을 세우고 벽상이등공신(壁上二等功臣)으로 대승(大丞)이 된 유차달(柳車達)을 시조로 삼고 있다. 유주(儒州:문화의 옛 이름)의 유력한 인물이었던 그는 본래 이름이 해(海)인데 태조 왕건이 후백제군을 치기 위해 남하하던 중 군량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수레 1,000량(輛)을 만들어 군량을 보급한 공으로 벼슬과 '차달'이라는 이름을 하사받았다고 한다. 그의 선대는 본래 차(車)씨로 신라 애장왕 때 좌상(左相)을 지낸 6대조 차승색(車承穡)이 화를 면하기 위해 유색(柳穡)으로 변성명하고 유주의 구월산(九月山)에 숨어 산 이후로 유씨를 칭하게 되었다. 태조가 유차달의 두 아들 효전(孝全)과 효금(孝金)에게 각각 차씨와 유씨를 잇게 함으로써 차씨와 유씨는 동조이성(同祖異姓)의 관계가 되었다. 유차달의 9세손인 경(璥)이 고려 고종 때 최의(崔)를 죽이고 왕실의 권위를 회복한 공으로 추성위사공신(推誠衛社功臣)의 호와 함께 선대의 세거지인 유주를 식읍(食邑)으로 하사받은 이후 문화를 관향으로 삼았다고 한다. 유차달의 7세손으로 정당문학(政堂文學)을 지낸 공권(公權)의 두 아들 언침(彦琛 또는 彦)과 택(澤)의 후손이 각각 문화유씨의 큰 계통을 이루며, 여기서 갈라져나온 지파로 시랑공파(侍郞公派)·문숙공파(文肅公派)·하정공파(夏亭公派)·장령공파(掌令公派)·곤산군파(崑山君派)·문희공파(文僖公派)·문평군파(文平君派)·지후사공파(祗候使公派)·좌상공파(左相公派)·검한성공파(檢漢城公派)·정숙공파(貞肅公派)·판사공파(判事公派)·수사공파(水使公派)·부윤공파(府尹公派)·충경공파(忠景公派) 등이 있다.
유차달의 후손 가운데 일부는 관향을 달리하여 문화유씨로부터 분적해나왔는데 서산유씨·선산유씨·전주유씨, 진산군(晋山君) 인비(仁庇)를 관조(貫祖)로 하는 진주유씨 등이 그러한 성씨이다. 서산유씨는 유차달의 10세손이며 고려 명종 때 정당문학을 지내고 서령부원군(瑞寧府院君)에 봉해진 성간(成澗)을 시조로 삼고 있다. 정숙공파·문희공파가 있고, 여기에서 다시 대사헌공파(大司憲公派)·무동처사공파(楙洞處士公派)·판관공파(判官公派)·한성좌윤공파(漢城左尹公派)·군수공파(郡守公派)·태재공파(泰齋公派) 등의 지파가 갈라져나왔다. 선산유씨는 문화유씨 출신인 순(淳)의 아들 원비(元庇)의 후손들로 원비가 선산군(善山君)에 봉해진 것을 계기로 그를 시조로 하고 선산을 관향으로 삼아 문화유씨에서 분적했다고 한다. 전주유씨의 시조는 문헌에 따라 완산백(完山伯)에 봉해진 습(濕)으로 전하기도 하고 문화유씨 10세손인 양재(良梓)로 전하기도 한다. 양재는 고려 때 정당문학을 지낸 공권(公權)의 증손자이며 순의 아들로 전성군(全城君:全城은 전주의 옛 이름)에 봉해졌기 때문에 후손들이 그를 시조로 하여 문화에서 분적했다고 한다. 충숙공파(忠肅公派)·장령공파(掌令公派)·현감공파(縣監公派) 등의 지파가 있다.
진주유씨는 유차달의 후손으로 문화유씨에서 분적한 계통과 진주의 토족으로서 고려 때 좌우위상장군(左右衛上將軍)을 지낸 유정(柳挺)을 시조로 하는 계통이 따로 대를 이어왔는데 일반적으로 전자를 이유(移柳), 후자를 토유(土柳)라 일컫는다. 이유계 진주유씨는 문헌에 따라 언침 또는 언침의 손자이며 순의 아들로 밀직사사(密直司使)를 지낸 인비를 관조로 전하는데, 언침이 일찍이 공을 세워 진주백(晋州伯)에 봉해지고 그의 손자 인비의 대에 본격적으로 문화유씨에서 분적하여 진주를 본관으로 삼게 되었다고 한다. 토유계 진주유씨는 진주에 대대로 토착하여 세를 떨친 토성으로, 유정이 진강부원군(晋康府院君:晋康은 진주의 옛 이름)에 봉해진 것을 계기로 후손들이 그를 시조로, 진주를 관향으로 하여 대를 이어오고 있다. 양화공파(良和公派)·총랑공파(摠郞公派)의 양파가 있고 여기서 다시 백참판공파(伯參判公派)·계참판공파(季參判公派)·안간공파(安簡公派)·진천군파(晋川君派)·대사성공파(大司成公派)·판서공파(判書公派) 등의 지파가 갈라져 나왔다.
진주유씨에서 분적한 것으로 전하는 영광유씨는 조선 정조 때 등과하여 전라감사를 지낸 자택(資澤)을 시조로 하여 대를 이어오고 있다. 풍산유씨는 고려 때 호장(戶長)을 지낸 절(節)을 시조로 하는 성씨이다. 풍산(豊山:지금의 경북 안동에 있었던 지명)은 선대의 세거지였으며 이를 연유로 후손들이 풍산을 관향으로 삼았다고 전해오고 있다. 고흥유씨는 고려 때 호장을 지낸 영(英)을 시조로 하는 성씨로 문화유씨계와는 계통을 달리한다. 고흥은 시조 영 이래의 세거지이고 후손 영밀공(英密公) 청신(淸臣)이 고흥부원군(高興府院君)에 봉해짐으로써 고흥을 관향으로 삼게 되었다고 한다. 2000년 인구주택총조사의 성씨 및 본관 집계결과에 따르면, 가구수 18만 6,610호와 인구수 60만 3,084명으로 성씨 중에서 인구순위 19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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