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차류(車柳) 양문(兩門)의 역사(歷史)를 올바르게 시정(是正)하고 정리(整理)하여 우리 후손(後孫)에게 물려주는 것이 조상(祖上)을 올바르게 모시는 도리(道理)라 생각한다.
우리 차문(車門)은 고려(高麗)가 망하면서 멸족지화(滅族之禍)의 수난(受亂)을 당(當)하고 모든 문헌(文獻)이 소실(燒失)되어 사적(史蹟)의 소멸(消滅)로 인하여 차류 양문(車柳 兩門)의 역사(歷史)가 많은 부문(部門)에서 왜곡(歪曲)되어 오늘날까지 전(傳)하여 왔다.
조선(朝鮮)이 개국(開國)하면서 조선조(朝鮮朝)에 역적(逆賊)으로 몰려 서민(庶民)으로 전락(轉落)되었으며 목숨을 부지하기 위하여 모든 수모(受侮)를 참으면서 살아왔다.
일부 몰지각(沒知覺)한 자들이 역사(歷史)를 왜곡(歪曲)하여 오늘날까지 전(傳)하여 오고 있다. 그러나 우리 차문(車門)의 선조(先祖)들께서는 좋은 세상(世上)이 오면은 우리의 문사(門史)를 바로 잡으라고 암시(暗示)하는 선대(先代)들의 정신(情神)이 우리 문헌(文獻) 곳곳에 담겨 있다.
우리는 이것을 근거(根據)로 하고 차원부 설원기(車原 雪寃記)와 설원록(雪寃錄)을 참고(參考)로하여 우리의 역사(歷史)를 바로 잡고 고려(高麗) 시대(時代)의 우리 가문(家門)의 위상(位相)을 회복(回復)하고 조상(祖上)을 올바로 모시는 도리(道理)를 다하여야 한다.
우리 모두는 사심(私心)을 버리고 공정(公正)한 마음으로 우리 양문(兩門)의 역사(歷史)를 바로 잡아 후손(後孫)에게 전(傳)함이 조상(祖上)을 올바로 모시는 일이다. 이러한 마음으로 고서(古書)의 문헌(文獻)과 사가(史家)들의 말을 인용(引用)하여 가성(假姓) 류씨(柳氏)라고 한 이유(理由)를 설명(說明)하고자 한다.
첫째 우리 나라 사가(史家)의 말에 의하면 옛날 신라(新羅) 고려(高麗) 시대(時代)는 국법(國法)에 왕(王)이 성(姓)을 하사(下賜)하지 않으면 성(姓)으로 인정(認定)하지 않았으며 나라에 공(功)을 세우고 벼슬을 하게되면 나라의 왕(王)이 성(姓)을 하사(下賜)하여 인정(認定)을 받기 때문에 옛날 이 시대(時代)는 성(姓)없는 백성이 많았다고 한다.
우리 차씨(車氏)는 신라(新羅) 태조(太祖)로부터 차씨(車氏)의 성(姓)을 사성(賜姓)받아서 내려 오다가 신라(新羅) 애장왕조(哀莊王朝)의 좌상(左相)이신 차승색(車承穡)께서 애장왕(哀莊王)을 살해한 김언승(金彦昇 : 헌덕왕(憲德王)을 죽이려다 계략(計略)이 누설(漏泄)되어 헌덕왕(憲德王)이 시상(施賞)으로 금천근(金千斤)과 식읍만호(食邑萬戶)를 내 걸고 체포령(逮捕令)을 선포(宣布)하니 좌승상(左丞相) 차승색(車承穡)께서 유주(儒州) 구월산(九月山)으로 둔적(遁迹)하시어 조모(祖母)의 성(姓)인 양씨(楊氏)를 스스로 모칭(冒稱 : 남의 성(姓)을 자기 성(姓)으로 거짓 꾸며 쓰는 것을 말함)하던 것이 가성(假姓) 류씨(柳氏)로 변(變)하여 내려 오면서 차승색(車承穡)께서 본 성명(本 姓名)을 감추고 가성명(假姓名) 류백(柳栢「穡으로 한적이 없음」)으로 사용(使用)하시면서 살아 온 것이 6세(世)인 해 선조(先祖)까지 가성(假姓)을 사용(使用)한 것이다.
류백(柳栢)으로 가성명(假姓名)을 사용(使用)하면서 류해(柳海)까지 내려와도 나라에서 사성(賜姓)받은 사실(事實)이 없음으로 이 성(姓)은 가성(假姓)이라 하는 것이며 고려(高麗) 태조(太祖)로부터 효금(孝金) 선조(先祖)께서 사성(賜姓)을 받은 문화(文化) 류씨(柳氏)를 가성(假姓)이라 한적이 없다. 류백(柳栢)으로부터 류해(柳海)까지는 가성(假姓)임이 옳은 표현(表現)이다.
두 번째 고려(高麗) 태조(太祖)께서 논공책록(論功策祿)하던 날 가성(假姓) 류해(柳海「本姓 車海」)선조(先祖)에게 조상(祖上)을 잊지 말라고 차달(車達)이란 호(號)를 하사(下賜)하시면서 특명왈(特命曰)
“念昔車氏之弘烈旣不可忘也요 這間柳氏之冒稱又不可廢也라”
번역하면 “특별히 명하여 말씀 하시기를 옛 차씨(車氏)를 생각하면 원래의 홍열(弘烈 : 조상들이 쌓아 놓은 공덕을 말함)을 가히 잊을수 없고 그간 류씨로 모칭(冒稱 : 가성(假姓)과 같은 남의 성(姓)을 거짓꾸며 써오는 것을 말함)한 것을 또 폐하는 것도 옳지 못하다.” 하시면서 장자(長子) 효전(孝全)은 조상(祖上)의 구성(舊姓) 차씨(車氏)로 승계(承繼)하고 차자(次子) 효금(孝金)은 잉위(仍爲) 류씨(柳氏「그대로 류씨로 하라」)라 하시면서 류씨(柳氏)로 명사(命賜)하였다. 비로소 류씨(柳氏) 성(姓)이 이 세상(世上)에서 인정(認定)을 받고 존재(存在)하여 내려오는 것이 문화(文化) 류씨(柳氏)이다. 이 이전(以前) 류백(柳栢)으로부터 류해(柳海)까지는 사성(賜姓)받지 않았으니 가성(假姓)이 확실(確實)하다.
세 번째 우리 문헌(文獻)과 문화(文化) 류씨(柳氏)의 문헌상(文獻上) 장자(長子) 효전(孝全)은 조상(祖上)의 구성(舊姓) 차씨(車氏)로 승습(承襲)하라 하였는데 이 승습(承襲)은 승계(承繼)하라는 말이며 승계(承繼)라 하는 것은 처음부터 끊어지지 않게 이어 가라는 말이며 중간(中間)에 끊어지면 이것은 승계(承繼)라 할수 없는 것이므로 이 승계(承繼)란 말은 가성(假姓)을 사용(使用)한 류백(柳栢) 선조(先祖)로부터 류해(柳海) 선조(先祖)까지 구성(舊姓) 차씨(車氏)로 복성(復姓)하라는 뜻인데 문화(文化) 류씨(柳氏)의 문헌(文獻)이 이론상(理論上) 전후(前後)가 맞지 않는 논리(論理)로 꾸며져 있다. 그리고 차자(次子) 효금(孝金)은 잉위(仍爲) 류씨(柳氏)라 하였는데 이것은 가성(假姓)을 써 오던 것을 없앨 수 없으니 그대로 류씨(柳氏)로 하라 한 것인데 이것을 오역(誤譯)하여 승계(承繼)란 용어(用語)를 고려(高麗) 태조(太祖)가 말하지도 않았는데 “잉(仍)”자를 승계(承繼)란 뜻으로 풀이 하여 문헌(文獻)과 문중사(門中史)를 왜곡(歪曲)하고 똑같은 조상(祖上)인데도 가성(假姓)을 사용(使用)한 류백(柳栢) 선조(先祖)로부터 보림(普林) 선조(先祖)까지는 조상이 아닌 것처럼 하고 마지막 가성(假姓)을 사용(使用)한 류해(柳海) 선조(先祖)를 류차달(柳車達)로 기록(記錄)하여 문화(文化) 류씨(柳氏)의 시조(始祖)라 하는 것과 또 조상(祖上)의 성자(姓字)를 자손(子孫)이 이름자로 하는 것은 조상(祖上)에 대한 불효(不孝)한 행위이며 큰집인 차문(車門)을 무시한 처사라고 볼 수밖에 없다. 고려(高麗)의 개국(開國)의 공신(功臣)인 원덕대왕(元德大王)의 본성(本姓)이 차씨(車氏)인데 차자(車字)로 이름 자(字)로 쓴다면 이것은 원덕대왕(元德大王)을 욕되게하는 불충(不忠)의 결과(結果)가 되는 것이니 당연히 시정(是正)되어야 한다.
다시는 이러한 오류(誤謬)를 범(犯)하지 마시고 시정(是正)하여 같은 혈통간(血統間)에 정감(情感)을 기원(祈願)한다.
끝으로 고려(高麗) 태조(太祖)로부터 사성(賜姓)을 받기 이전(以前)의 류씨(柳氏) 성(姓)을 가성(假姓)이라 한 것이며 고려(高麗) 태조(太祖)께서 사성(賜姓)한 문화(文化) 류씨(柳氏) 성(姓)을 가성(假姓)이라 한 적이 없음을 재삼(再三) 강조(强調)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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