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무덤에 얽힌 역사
[조선일보]
전남 강진군 작천면 척동마을 앞. 논 가운데에는 높이 2.5m에 지름 8m가량인 무덤이 있다. ‘兩蹇堂愛馬之?(양건당 애마의 무덤)’이란 지석이 있다. 양건당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때 활약한 장군으로 본명은 황대중(黃大中·1551~1597). 그는 1594년 이순신 장군 휘하에 거제도 전투에서 분전하다 한쪽 다리를 다쳤다. 그는 이미 왼쪽 허벅지를 베어 모친의 병을 낫게 했다는 일화로 효건(孝蹇)이라 불렸었다. 이순신장군이 “과거의 다리는 효건, 지금의 다리는 충건(忠蹇), 두 다리를 저니 양건(兩蹇)”이라고 해, 양건당이 되었다 한다.
양 장군은 정유재란때 남원성 전투에서 전사했다. 그의 곁에 항상 있었던 말이 숨진 황장군의 주검을 등에 싣고 300리 길을 달려 고향까지 돌아왔다고 한다. 장례를 마치자, 애마가 아무것도 먹지 않다가 3일만에 숨졌다고 한다. 그래서 마을앞에 무덤을 만들어 지금까지 후손들이 말무덤의 유래를 가전(家傳)해오며, 벌초를 해오고 있다.
전남 곡성군 옥과면 합강리 앞 들녘. 이곳에도 말무덤이 있다. ‘의마총(義馬?)’이다. 이 무덤도 위의 경우와 비슷하다. 옥과 태생 유팽로(柳彭老)장군은 임진왜란 당시 남원 출신 양대박(梁大樸) 등과 함께 유학자 고경명(高敬明)을 찾아가 거병을 건의, 충청 금산성에서 왜군과 접전을 벌였다. 유 장군은 고경명을 구하다가 순사했고, 고경명도 아들과 함께 전사했다. 이 때 유장군의 말이 유장군의 머리를 물고 그의 생가인 합강리로 돌아왔다고 전한다.
전북 김제시 금산면 쌍룡리 용암마을. 이 마을앞는 ‘용마(龍馬)의 무덤’이 있다. “천하(天下)는 공물(公物)”이라며 조선사회의 변혁을 갈구했던 기축옥사(己丑獄事)의 중심인물인 정여립(鄭汝立·1544~1589)과 관련된 말의 무덤이다. 시대를 앞섰던 그는 모반의 죄목으로 몰려 자결하고 말았고, 이를 기화로 호남인사 1000여명이 정치적 숙청을 당했다는 정치적 대사건이 벌어졌었다. 정여립이 제비산(그 아래 금산사가 있음)에서 천일기도를 한 후 용마를 얻었다고 한다. 정여립이 용마를 타고 활을 쏘아 용마와 화살중 어느 것이 빠른지 시합을 했는데, 화살에 뒤졌다며 용마의 목을 쳐 죽인 순간, 화살이 뒤에서 날아와 용마의 궁둥이에 박혀버렸다. 그러자 애석하게 여긴 정여립이 말을 묻었다는 전설이 이어지고 있다.
황대중과 유팽로장군의 말은 ‘충의의 상징’으로, 정여립의 말은 ‘실패한 영웅의 애석함’을 전해주는 것으로 풀이된다.
(gakwon@chosun.com )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 기사제공 ] 조선일보 | 조선일보 기사보기 |
출처 : 맑고 향기롭게 살아가는 방법을 찾아서~~~
글쓴이 : 어름산이 원글보기
메모 :
'문화류씨'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스크랩] 촌수보기 (0) | 2008.11.05 |
---|---|
[스크랩] 항렬(行列)이란? (0) | 2008.11.05 |
[스크랩] 역사에 입각한 문화류씨 선계에 관한 논의 (0) | 2008.11.05 |
[스크랩] 문화류씨 세계도 (0) | 2008.11.05 |
[스크랩] 柳라는 한자 (0) | 2008.11.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