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류씨

Re:여기서 인사드립니다 광주안가.

ryu하곡 2008. 9. 3. 00:20

저의 하정공파보 寬(관) 선조의 配 광주안씨에 대한 부분만 소개합니다.(2008년 문화류씨 세보 내용도 같음)

 

“配 廣州郡夫人安氏 父 判典農寺 器 祖文判典寺事 海 曾祖 文判僉議事壽育 三男”이라 나옵니다. 즉 광주군 부인 안씨 아버지는 판전농시사를 역임하신 기 이시고, 조부는 문과에 급제하시고 판전시사에 오르신 해 이시고, 증조는 문과에 급제하시고 판첨의사를 지내신 수육이시다.아들을 3명 두었는데 첫째는................

참고로 둘째 부인 풍주이씨는 친정 부, 조부, 증조, 외조의 기록이 있습니다.

하정공 寬은 1346년부터 1433년까지 생존하신 분입니다.

문화류씨 가정보는 1565년에 발행된 족보입니다. 광주안씨 족보가 언제 처음 발행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광주안씨 족보에 시조로부터 몇세 器(기), 父 海, 祖父 壽育과 벼술이 각각 判典農寺, 判典寺事, 判僉議事 가 맞는다면, 광주안씨 족보에 하정공의 기록이 없다고 해도 문화류씨 기록을 믿어야 할 것 같습니다. 안씨 족보에 하정공 기록이 없다고 해도, 어떤 이유로 器, 海, 壽育의 이름과 判典農寺, 判典寺事, 判僉議事를 문화류씨 족보에 기록 했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름과 벼슬명이 다르다면 몰라도 비슷하면 문화류씨 족보의 자료를 인정하는 것과 안씨 족보에 器의 아들 3명의 기록만 있고 딸(곧 사위)의 기록이 없는 것은 별개의 문제라 생각됩니다.

 

그 이유는 하정공 첫째부인은 부, 조부, 증조의 기록이 있지만 둘째부인은 부, 조부, 증조, 외조가 나옵니다. 그러면 첫째부인의 외조 기록이 없다고 현실에서 광주안씨의 외조가 없었다고 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기록에는 없어도 분명 외조는 계셨을 것입니다.

 

2000년대 현재의 경우를 말씀 드리겠습니다. 저의 파보를 만들 때 ①어떤 집안은 딸을 제외한 분이 계십니다. (수단에 딸을 넣으라고 했는데도) 몇 년후 다시 파보를 만들 때 ②그분은 딸을 수단에 넣었습니다. ②의 족보를 보면 딸이 있는데 ①의 족보를 보면 딸이 없습니다. 만약 ①의 족보만 보존되고 ②의 족보는 차기 족보를 만들 때 반영되지 않았다면 그분은 딸이 없는 것입니다(다행히 ②도 함께 있어 다행이지만)-- 즉 현대인도 그러는데 과거에 1500년대 어떤 이유로 광주안씨 족보에 하정공의 자료가 없는지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 입장에서 보면 부, 조부, 증조의 이름이 안씨 족보에도 일치한다면 현재 안씨 족보에 하정공 자료가 없다고 해도 하정공을 인정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부, 조부, 증조의 이름과 세대수가 다르다면 “ 하정공은 명망이 높은 분이셨는데 광주안씨 족보에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 이상한 점입니다 ” 라고 이야기 하는 것은 타당하겠습니다.

 

***참고 : 저의 문화류씨 족보는 1565년 가정보, 1689년 기사보, 1742년 경신보, 1765년을유보(경신보에 누락된 종중이 많아서 발행), 1803년 정사보......... 등으로 앞에 발행한 자료를 변동 사항이 없으면 그대로 인용하였으므로, 꼭 가정보를 보지 않더라도 2008년 문화류씨세보 내용을 보아도 하정공 자료는 가정보 내용과 같다고 생각합니다.